길에서 고양이를 데려오면,인간은 자신이 '선택'했다 여긴다. 하지만, 실은 길고양이가 인간을 '간택'했다는 것이 맞다.
아픈 길고양이나 새끼 낳은 어미고양이가, 평소 잘 대해준 사람에게 찾아가 제 몸을 의탁하는 사례가 그러하다.
물론 모든 고양이가 거리의 삶을 포기하고 인간세계로 합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길고양이로 살기를 그만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싶은 고양이도 있는 것이다. 신사 고양이는 그런 길고양이의 '간택과 정착'에 관한 이야기다.

스스로를 신사 고양이라 여기는 이 길고양이도 처음부터 인간을 간택하는 눈이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길고양이를 선택했을 뿐 책임감은 없었던 철부지 소년 알렉산더를 떠나, 신사 고양이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반려인을 고르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에게 신선한 대구 요리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걸 알만큼 눈치 있는 반려인이 있고,
또 당당한 고양이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정원이 딸린 집을 찾아낸다.

'무뚝뚝한 목소리'(저자)와 '다정한 목소리'가 함께 사는 집에서 '톰 존스'라는 새 이름을 얻은
신사 고양이는 두 인간을 '가정부'로 여기며 집고양이의 삶에 익숙해 간다.
(원문이 가정부였겠지만, 번역하시는 분이 조금 의역해서 '집사' 정도로 번역했으면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좀 더 친근한 마음이 들었을 듯하다.
고양이 커뮤니티에서는 가정부라는 말보다는 집사라는 말을 더 많이 쓰니..)
그래도 신사 고양이가 시를 읊는 부분에서 한글로도 각운을 맞추려 하는 등 번역자의 세심한 배려는 눈에 띈다.

난 원래 고양이를 의인화한 소설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인간이 고양이의 마음을 멋대로 추측하고 쓰는 것 같아서.
한데 책을 읽다 어느 한 대목에서 울컥하는 걸 느꼈다. 두 사람의 집에 정착한 톰 존스가 몸이 아프게 되자,
함께 사는 반려인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부분을 서술한 아래 인용 부분이다.

톰 존스에게는 싸울 힘도 의지도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다.
톰 존스는, 가정부들이 이제 그저 가정부가 아니며 자기 몸이 전혀 나아지지 않더라도
가정부들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된 것이다. 톰 존스는
틀림없이 안전했다. 두 가정부는 톰 존스의 반지르르한 호랑이 무늬 털 때문에
톰 존스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흰 앞가슴이나 흰 앞발 때문에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멋진 초록색 눈 때문도 아니었다. 흰 꼬리초리 때문도 아니었다. 아니, 아니었다.
두 사람은 톰 존스가 톰 존스이기 때문에 톰 존스를 사랑했다." 
 
 
어쩌면 아픈 고양이를 돌보는 모든 사람이 저런 마음을 느끼지 않을까.
실제로 이 소설의 주인공 톰 존스를 키워 본 저자이기에 그런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것도 같고.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도 아프기 때문에,  이 부분에 더 공감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읽는 사람의 입장이나 선호하는 책의 유형에 따라 선호도가 좀 갈릴 것 같다.
일단 '신사 고양이'의 거들먹거리는 듯한 말투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권하기 어렵겠고
문지 시선집처럼 얇고 긴 판형에, 147쪽밖에 되지 않는 부피를 보고 당혹스러운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다만 길고양이를 직접 데려와 본 사람은, 이 책으로 고양이가 내게 오기 전 살았던 삶을 상상할 수 있겠고
아픈 고양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어느 대목에서 나처럼 울컥하며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 번역서의 원제(The Fur Person)이기도 한 '털북숭이 인간'에 대한 대목이자,
신사 고양이가 늘 마음에 새겼던 '신사 고양이의 십계명'에 추가된 열한 번째 계명이 실려 있는데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털북숭이 인간'은 고양이의 자긍심과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면서 올바른 방법으로
인간들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다.(...)살아있는 한 그 사랑하는 사람과 머물기로
마음먹은 고양이다. 이런 일은, 고양이가 어느 부분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듯,
인간이 어느 부분 스스로를 고양이라고 생각해야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상호 교환이다."


책의 쪽수 표시 부분에 고양이 귀가 그려져 있는데, 이런 세심한 장치는 마음에 든다^^

다만 '신사 고양이'는 일러스트가 좀 아쉽다. 신사 고양이도 책 속에서 나름 모험을 많이 했는데도, 정작 그림은 
거의 고양이 몸 중심으로 클로즈업된 채 그려지고 배경이 없어서 그런지, 생동감이 좀 떨어진다.

고양이가 등장하는 소설 중에 그림이 가장 예뻤던 것은 '검은 고양이 네로'(보물창고)다. 이 책의 주인공인 '네로 꼬를레오네' 역시
'신사 고양이'보다 더한 자아도취 고양이인데, 처음에는 이렇게 건방진 고양이가 있나 싶다가, 그림에 홀딱 반해 용서가 됐다.^^  
한국에서는 '책 그림책'(민음사)으로 많이 알려진 크빈트 부흐홀츠의 삽화가 무척 섬세하고 아름답다. 예쁜 고양이 그림이 많이 실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아래 그림을 클릭하면 미리보기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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