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스톡홀름에 도착했을 때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국립미술관(National Museum)과 현대미술관(Moderna Museet)이다. 스톡홀름 시내에 위치한 이 두 미술관은 비단 스웨덴뿐 아니라 현대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두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장품 역시 스웨덴 국내 미술에 국한되지 않고, 서양미술사를 관통하는 굵직굵직한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스웨덴 국립미술관-중세부터 근대까지 이르는 서양미술의 보고
스웨덴 국립미술관은 그 규모를 따지자면 가히 스웨덴 최대의 미술관이라 할 만하다. 스웨덴 왕궁과 물 하나를 건너 마주 보일 만큼 가깝기 때문에, 왕궁을 돌아보는 일정과 함께 끼워 넣으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1866년 건축된 미술관 건물이 고풍스러운데, 아트숍이 있는 1층을 제외한 2층부터 전시가 시작된다. 


2층 전시장은 태피스트리, 장신구, 식기 등 17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제작된 세계 각지의 공예품과 가구 등이 주류를 이룬다. 16세기 그립스홀름 성에 있던 구스타프 바사의 소장품을 토대로 왕가에서 선물 받거나 사들인 것, 전쟁으로 얻은 전리품이 점차 덧붙여지면서 오늘날의 규모에 이르른 것이다. 유물 보존을 위해 전시장 조도를 제한하여 엄숙한 느낌을 준다.   

3층에는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비너스 상을 비롯해 다양한 고대 그리스 로마 대리석 조각상이 실물 크기로 모각되어 육중한 자태를 자랑한다. 이곳에는 중세의 이콘을 비롯해 근대 회화 및 조각 작품 등을 전시하면서 서양미술의 역사를 압축해 보여준다.  미술관에서 단연 인기 있는 곳은 렘브란트의 전시실이다. 전시실 한가운데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작품을 볼 수 있어 이채롭다. 사용자 편의를 고려한 미술관 시스템은 부럽기 짝이 없다.


스웨덴 국립미술관에서 스웨덴 현대미술관까지 이동하는 도중에, 고전적인 기념비적 조각상과 마주치게 된다. 회토리에트 광장 동쪽에 위치한 콘서트 홀(Konserthuset) 앞에는 스웨덴의 대표적 조각가 칼 밀레스(Carl Milles, 1875~1955)가 1936년 완성한 역작 ‘오르페우스 분수’가 위용을 자랑한다. 길쭉하고 날렵한 몸매의 오르페우스는 청동의 무게를 잊고 음악에 몸을 실어 하늘로 둥실 떠오를 것만 같다. 오르페우스를 지키는 정령들의 머리에 살며시 앉은 새는 조각의 영혼을 상징하는 것일까.
 
재미와 의미 살린 공공미술 프로젝트-카우 퍼레이드
스웨덴에서 인상깊은 것은 이런 조각상뿐이 아니다. 유머 감각을 가미한 공공미술 작품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국립미술관 가는 길에 있는 수상조각 '물 위에 뜬 거인의 손' 같은 설치작품은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지나는 사람들이 유쾌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팍팍한 일상에 조그만 웃음을 이끌어낸다는 것, 예술이 지닌 또 하나의 힘일 것이다.

또 하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소의 형상을 한 조각상을 캔버스 삼아 재치 만점의 상상력을 펼치는 ‘카우 퍼레이드(Cow Parade)’이다. 1999년 뉴욕, 시카고 등지에서 시작된 이 거리예술전은 전 세계를 순회하며 열리는데, 단순히 거리에 조형물을 설치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스톡홀름 시민들의 일상 속에 적극적으로 파고든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스톡홀름에는 모두 70마리에 달하는 소가 배치되었는데, 이를테면 쇼핑센터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모자이크로 장식한 소 조형물을 배치한다거나, 백화점 내부에 가부좌를 튼 소 머리의 선사를 설치하고, 때로는 멀쩡한 쇼윈도우에 구멍을 뚫고 뛰쳐나오는 소를 묘사하기도 한다.


재치 있는 소 조형물을 보는 사람들이야 즐겁지만, 설치작품이 영업장소를 상당 부분 침해하므로 시민들의 열린 사고가 없다면 현실화되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카우 퍼레이드에 참여한 소 조형물은 일정 기간의 전시가 끝나면 모두 경매되고 그 수익금은 자선사업에 쓰인다고 한다. 영구 설치되는 것이 아니어서 좀 아쉽기는 하지만, 작품들은 공식 홈페이지(www.cowparade.com)에서 다시 볼 수 있다.  
 
파격을 실험하는 현대미술관
거리를 걸으며 공공미술과 함께 하는 즐거운 산보를 만끽했다면, 이제 현대미술관을 들러볼 차례다. 스톡홀름 솁스홀멘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은 1958년 개관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98년 신축된 것이다. 올해 리모델링을 완료했다는데,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알찬 현대미술의 보물창고다. 5천 여 점의 회화, 조소 및 설치작품, 2만 5천 점의 수채화, 드로잉, 그래픽 작품, 1만 여 점의 사진, 비디오 예술작품 및 필름이 소장되어 있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전시관은 현대미술 상설전과 특별전으로 나뉘는데, 달리, 피카소, 키리코, 미로 등 현대미술의 장을 새롭게 연 회화의 거장들부터 기존 미술의 개념을 여지없이 깨트리는 뒤샹, 라우센버그, 오펜하임 등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전시장과 전시장을 잇는 복도에는 역시 긴 소파가 마련되어 있고 소장품과 특별전의 작품 도록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복도의 한쪽 벽면은 통유리여서, 바깥의 아기자기한 조경을 바라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1층 아트샵에서는 예술 서적과 아트포스터,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데, 일본 작가 나라 요시토모의 아트상품을 만나볼 수 있어 반가웠다. 특유의 몽유병적 캐릭터를 장난감으로 만든 ‘Little Wanderer’라는 것으로, 밑면에 모터를 장착해 이동할 수 있게 한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10만원에 달하는 가격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내려놓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때 눈 딱 감고 살 걸’ 하고 후회를 했다. 어딘지 삐딱한 표정의 소녀가 담배를 꼬나 문 그림이 한 가운데 그려져 있고, 테두리에는 Too Young To Die라고 씌어진 재떨이도 익살맞다.

미술관에서 나오는 길에는 부부 조각가 니키 드 생팔과 장 팅겔리의 조그만 야외조각공원 ‘낙원’이 관람자를 배웅한다. 생명력 넘치는 건강한 여성의 모습을 원색적인 색채로 표현한 니키 드 생팔의 영원한 여성상 ‘나나’와 함께 팅겔리의 키네틱 조각이 나란히 서 있는 현대미술관은, 두 사람의 공동작품 제목처럼 ‘예술의 낙원’인 듯하다.

스웨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NCS(Natural Color System) 색채표기 시스템을 개발한 국가이기도 한데, 그런 까닭에서인지 색채로 표현되는 국가 이미지에 많은 비용을 투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톡홀름 시내를 돌다 보면 옛 건물들은 물론 새로 지은 건물조차 건축 양식이 비슷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는 건물의 모양부터 고도, 색채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 도시 전체의 통일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건축물의 파사드 색채는 규정해놓은 색채 패널이 기억에 남는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황색 계열의 건축 색은 이미 거리에서 실제로 활용되고 있는 것들이다.


어떻게 보면 딱딱한 규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덕분에 스웨덴을 방문한 사람들은 옛 건물의 정취와 함께 노랑·갈색 계통의 은은한 파스텔톤 색채로 가득한 시가지의 기억을 안고 떠난다. 이런 것이 스톡홀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뚜렷한 도시 이미지로 남게 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의 아름다움 역시 철저한 도시계획 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말의 몸통을 빨간색으로 채색하고 바탕에 예쁜 전통문양을 그린 스웨덴 전통 공예품 '달라헤스트'를 구입해 들고 나오면서 스톡홀름 기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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