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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의 흥미로운 독서대담-知의 정원

by 야옹서가 2010. 8. 9.


 


책으로 가득한 ‘고양이 빌딩’으로 유명한 칼럼니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知의 정원》(예문)이 나왔습니다. 일본에서 현재 '가장 논쟁적인 논객 중 한 명'이라는 사토 마사루와

함께 한 독서대담집입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

처럼, 이 책도 두 대담자의 엄청난 독서력을 보여주는 도서 목록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예전에 고양이 빌딩 방문기를 쓸 때도 이미 소개했고 한국에서도 워낙 유명한지라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지만, 독서대담집의 또 다른 주인공인 사토 마사루의 이름은 낯섭니다.

1940년생인 다치바나 다카시보다 스무 살이나 젊지만, 툭툭 받아치는 말을 읽어보면 만만치 않은 내공을

지닌 듯합니다. 러시아 주재 일본대사관에 근무하며 러·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애썼지만, 정치계의

파워게임에 밀려 배임 및 업무방해 혐의를 받고 실형 선고를 받았다고 하네요. 보통 사람 같으면

거대한 권력의 힘 앞에 좌절했겠지만, 그는 오히려 《국가의 덫》이란 책을 집필해 검찰 및 언론의 부당함에

반발했고,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합니다. 


두 사람이 한 권의 책에 대해 짧게, 혹은 길게 언급하며 서로 감상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이런 식의 독서 대담은, 어느 한쪽의 독서 내공이 부족하거나 해당 분야의

식견이 없다면 이어질 수 없습니다. 마치 호적수를 만난 탁구 선수들이 눈을 빛내며 경기에 몰입하는 것

같습니다. ‘어쭈, 제법인데?’ 하고 공을 툭 쳐서 넘기면, ‘이 정도야 별 거 아니지’ 하면서 가뿐히

공을 받아넘기는 듯한 모습이 이어집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책은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살짝 꼬랑지를 내렸을 법한 책이

수두룩한데, 이 두 사람은 마치 어제 본 인기 드라마 줄거리를 이야기하듯 슬렁슬렁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으며 그 모습을 상상해보니 ‘진짜 독서괴물이 따로 없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두 사람이 한 달에 책값으로 쓰는 비용만 대략 ‘십여 만 엔에서 20만 엔’에 달한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합니다. 


책에는 2가지 리스트가 실려 있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가 각각 서재 책장에서 꺼낸

100권의 추천도서 목록, 그리고 권말에 실린 ‘문고·신서 중에서 선별한 100권의 책’ 목록입니다.

대담자가 두 명이니, 추천도서도 400권에 달합니다. 누군가에게 책을 권해주는 일처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만,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저의 입맛에도 맞는 책이 있더군요.

저도 두 사람의 서재에서 책을 꺼내는 상상을 하면서, 400권의 책 중에 몇 권을 골라보았습니다.

한국에도 번역된 책이 일부 있으니,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추천한 것에 깊이 공감합니다.

고양이가 주인공이라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보고 나면 참 마음이 먹먹해지는 그림책이거든요.

이 고양이 이야기는 일본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에 나와서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일본 지식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책들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에, 한국 독자들에게는 《지의 정원》이

난해하게 읽힐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에 관심이 있는 분이나, 또한

이렇게 유별난 ‘독서 괴물’들이 추천한 책 목록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에 견딜 수 없다면,

기꺼이 이 책의 바다 속으로 뛰어들 만합니다. 대담 형식으로 여러 책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기 때문에,

짧은 책 이야기가 토막토막 이어지는 형식이니 여느 책과는 형식이 다르다는 점은 염두에 두시고요.


* 본문의 400권 목록과 더불어, 권말부록으로 두 편의 짧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부록 1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선택-섹스의 신비를 탐구하는 책 10권>(《문예춘추》 2007년 1월호 수록),

부록2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실전’에 도움이 되는 독서 기술 14개조>(《아사히 저널》 1982년 수록)

입니다. 부록 2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도 실려 있습니다. 책의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면

아래 도서링크로 방문해 보세요.

지의 정원 - 8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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