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3대 묘지로 흔히 페르라셰즈 묘지, 몽파르나스 묘지,

몽마르트르 묘지를 꼽습니다만, 이중 몽파르나스 묘지에는

특별한 사연을 담은 고양이 기념비가 있습니다.


이 묘지에 잠든 이들 중에는 세기의 커플로 불리던 사르트르와 보봐르를

비롯해 시인 샤를 보들레르,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 가수 세르주 갱스부르

등 수많은 명사들이 묻혀 있지만, 제 눈길을 끈 것은 이 기념비였는데요. 



밋밋하고 삭막해 보이기까지 하는 비석과 무덤 사이로, 뚱뚱한 뱃살을 드러낸 채 두 발로 우뚝 선 

고양이의 익살스런 모습에 그만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묻힌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가까이 가보았는데, 어쩐지 작품 스타일이 익숙합니다.


화려한 원색의 모자이크 조각, 비석에 적힌 꼬불꼬불한 글씨체는 설치작품과 조각으로 유명한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의 솜씨입니다. 그러나 몽파르나스에 니키 드 생팔이

묻힌 것은 아닌데...가만히 들여다보니 '리카르도'에게 바치는 기념비입니다.


리카르도라면, 1977년부터 10년간 니키 드 생팔의 어시스턴트로 함께 했던

리카르도 메농(Ricardo Menon)을 말합니다. 



1986년 니키 드 생팔이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한 조각공원 <타로 정원>에 전념할 무렵,

리카르도 메농은 숙원이던 연극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니키 드 생팔과 작별하고 파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1989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니키 드 생팔은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AIDS: You can't catch it holding hands?>를

공동집필했으며, 이 책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오랫동안

보필했던 리카르도 메농에 대한 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업이 아닐까 합니다. 그 메농과의

인연을 오랫동안 기리기 위해 이렇게 고양이 모양의 기념비까지 만들어놓은 것이죠.


넉살 좋게 잔잔한 미소를 띤 고양이와 마주보면, 숙연했던 무덤가에서도 슬며시 웃음짓게 됩니다.

니키 드 생팔은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이 다른 이에게도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라며

이 고양이 기념비를 세웠겠지요.



세상에 사연 없는 무덤은 하나도 없겠지만,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알고 보면 더욱 오래 기억하게 된답니다.

언젠가 제가 이 세상과 이별하는 날이 오면, 조그만 고양이 조각과 함께 잠들고 싶네요.

무덤을 찾아오는 사람도 살며시 웃음지을 수 있고, 저 역시 외롭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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