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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북유럽

할머니 고양이의 평화로운 시골 산책

by 야옹서가 2010.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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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아기처럼 작고 귀여운 상태일 것만 같았던 고양이도 나이가 들면

몸이 약해집니다. 올해로 열 살이 넘은 할머니 고양이도 관절이 나빠져서 높은 곳을

예전처럼 쉽게 오르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골 고양이의 즐거움인 영역 산책을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가뿐한 계단도 하나하나 조심스레 내려가며

산책을 시작합니다.

 

할아버지 내외가 나오실지 몰라 계단 맨 밑 신발 터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보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습니다. 아쉽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앉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1분 1초가 화살 쏘듯 빨리 지나가버리는 할머니 고양이에게는 매순간이 소중합니다.

그렇게 몇 분간 빤히 문 쪽을 보고 있던 고양이는 홀로 정원 산책을 시작합니다.


꼬리를 세우고, 익숙한 영역을 조심조심 발끝으로 더듬으며 걸어봅니다.

나이 들어 시각이 약해져도, 고양이에게는 예민한 청각과 후각이 있습니다. 수염으로

바람의 방향을 읽고, 날카로운 후각으로 익숙한 집의 향기를 기억해 냅니다. 아직은

길을 잃을까 걱정은 없습니다.


 잠시 들꽃 향기를 맡으며 풀숲에 숨어 사색하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즐겨 쓰는 나무 의자에서 기다려 보지만, 아직은 아무도 정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무의자에 할아버지의 온기가 남은 것 같아, 할머니 고양이는 쉽게 의자를 떠나지 못합니다.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 잔디밭에 드러누워 배를 지지는 게 최고입니다. 십수 년간

경험으로 터득한 삶의 지혜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좋은 곳을 놔두고,

햇빛이 따갑다며 그늘로만 숨어드는지 모를 일입니다.

햇빛에 배가 노릇노릇 다 데워지면, 다시 발라당 자세를 바꿔 등을 구워 봅니다. 

따스한 햇빛에 그만 소르르 잠이 옵니다. 할머니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만큼이나  잠이 많습니다.

기분도 좋고 날씨도 좋아, 오늘 너무 무리를 했나 봅니다. 정원에 무성한 풀잎을 베개 삼아,
 
스웨덴의 할머니 고양이는 깊은 단잠에 빠져듭니다. 평화로운 산책에 따라나선 나도

마음이 노곤노곤해져, 그 곁에 가만히 눕고 싶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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