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삼촌’ 유재선의 작업실은 내가 꿈꾸던 이상향과 꼭 닮았다. 한적한 주택가라 소음에 시달릴 염려가 없고, 정오께 작업실로 출근해 셔터를 올리면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곤 밥을 졸라대는 길고양이까지 있으니, 고양이 작가의 작업실로는 더 바랄 게 없다. 여섯 살배기 고양이 제이와 단둘이 사는 작가는 고즈넉한 작업실 한켠에서 고양이 그림을 그리고, 고양이 쿠션도 만든다.
 

일러스트레이션을 생업으로 삼고 있지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그를 일러스트레이터로만 규정하기엔 좀 서운하다. 그는 유리창에 마커로 그림을 그리는 윈도우 페인팅 작가로도 유명하고, 빈티지 인형을 파는 인형가게 사장님이자, 그림동화책과 잡지를 수집하는 고서점 주인이기도 하다. 그간의 작품을 모은 포트폴리오 격인 《고양이 삼촌》(레프트로드)도 펴냈다. 하드보드 표지를 손으로 일일이 붙여 만든 수작업 소량생산 책이다. 그렇듯 다양한 작가의 관심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곳, 일과 재미가 하나로 된 공간이 바로 유재선의 작업실이다. 

유재선은 작업실을 반으로 나눠, 수집품 전시 공간 겸 작업 공간으로 활용한다. 통유리창 너머로 언뜻 보이는 방이 전시 공간 쪽이다. 손때 묻은 빈티지 인형, 장정이 예쁜 그림책, 오래된 영화 속에서 슬쩍 꺼내온 듯한 빈티지 소품들…. 그동안 정성껏 모아온 오래된 보물들이 가득하다. 처음 작업실을 열었을 때, 동네 사람들은 ‘웬 총각이 인형 가게를 차렸나’ 했단다. 심지어 골동품 가게인가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남들 눈에는 유행 지난 구닥다리로 보이거나 특이한 물건으로 치부될지라도, 그에게 소중한 이유가 있다. 그가 만드는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작업하기 전에는 항상 모아뒀던 옛날 잡지를 펼쳐본다. 특히 《라이프》지에는 지금 시각으로 봐도 신선한 광고들이 많아서 좋아한다. 몇 십 년 전에 나온 그림책이랑 동화책도 자주 본다. 오래된 것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견해내는 것이다.


유재선이 좋아하는 고양이에 빈티지 인형의 요소가 결합되어 탄생한 것이 바로 고양이 쿠션이다. 고양이를 의인화한 복고풍 캐릭터를 그리고, 그들의 손에 빈티지 인형과 소품을 쥐어줬다. 오뚜기 인형을 안은 고양이 소녀, 복고풍 뿔테안경에 헐렁한 바지를 입은 1970년대 올드스쿨 스타일의 고양이 소년이 하나둘 만들어졌다.


고양이 쿠션은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 스캔을 받아서 타블렛으로 작업하고, 필름을 떠서 실크스크린 판을 만든 다음 수작업으로 찍어낸다. 타블렛으로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뿐 아니라,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천을 재단한 다음 쿠션 솜을 채워 넣는 작업까지 이 방에서 모두 이뤄진다. 일손이 바쁠 때면, 가끔은 누나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고양이 쿠션은 1차 10종 세트로 완성됐다. 앞으로도 새로운 버전의 고양이 쿠션을 꾸준히 만들어갈 예정이다.


작업대 앞에 놓인 붓과 그림 도구들 사이로 함께 사는 고양이 제이의 그림이 보인다. 작가 이름인 ‘재선’에서 영문 맨 첫 글자인 J를 따서 지어준 이름이다. 대학교 4학년 졸업 시즌인 2003년, 수원에서 자취하면서 10평짜리 오피스텔에 살던 무렵 처음 제이를 데려왔다.

“제이가 처음 저에게 왔을 때는 3개월 된 아기 고양이였어요. 졸업 시즌에 맞춰서 서울로 오려고 방을 내놓았는데, 제가 없을 때 복덕방에서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주려고 문을 열었다가 고양이를 보고 놀란 거죠. 고양이가 있어서 집이 싫다는 사람, 문 열어보고 무섭다며 바로 나간 사람도 있었대요. 복덕방에서 ‘고양이 때문에 집이 안 나가는데 어쩔 거냐’고 저희 집에 전화하는 바람에, 고양이 버리라고 난리가 났어요. 지금은 이사를 자주 안하니까 그럴 일은 없는데, 그때는 고양이를 키우는 것 때문에 집에서 반대가 컸죠. ”


한번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니, 유럽 여행을 가서도 다른 사람이 풍경 사진 찍을 때 그는 길고양이에게만 눈길이 갔다. 그래서 찍어온 사진들을 뒤져 보면 온통 고양이 사진뿐이다. 이른바 ‘유럽 고양이 여행’을 하고 온 셈이다. 어린 조카는 고양이를 유달리 좋아하는 삼촌에게 ‘고양이 삼촌’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제가 유전적으로 천식이 있는데, 그래도 견딜 만해요. 털만 날리지 않으면 좋겠지만… 제이는 친칠라 종이라 털 색깔이 참 예뻐요. 저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고 까칠하게 대하는데, 친구들이 안아보고 싶어 해도 너무 낯을 가려서 안타깝죠. 하지만 저는 제이가 저만 알아봐주고 다정하게 대하는 게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져요.” 


작가만 유독 따르는 고양이라서, 2009년 5월경 이곳에 작업실을 얻고 나서 제일 신경이 쓰였던 것도 제이였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하루 종일 함께 있곤 했는데, 이젠 오전 11시~정오 사이에 집을 나와 자정께 들어가니 반나절을 혼자 있을 제이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집도 일부러 작업실과 가까운 곳으로 구했다. 걸어서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여서, 짬짬이 제이랑 놀아주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온다. 


고양이가 없는 동안의 아쉬움은 작업실 근처 길고양이가 채워준다. 작업실로 놀러오는 길고양이는 모두 3마리. 작년 겨울부터 하얀 고양이가 안 보이기 시작해 걱정이란다. 나머지 2마리 중에 1마리는 매일 출근도장을 찍다하다시피 한다. 그 고양이에겐 ‘나비’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중성화 수술을 했다는 표시로 한쪽 귀가 살짝 커팅된 것을 보면, 누군가 근처에 돌보는 사람이 있는 길고양이인 모양이다.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고양이 문구를 구상 중인 유재선의 또 다른 꿈이 있다. 대중적인 디자인문구 작업과 더불어, 마음대로 그려나갈 수 있는 순수회화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이루고 싶은 꿈이다.


“제가 그린 고양이 캐릭터도 지금처럼 선적인 요소만 있으면 그냥 일러스트지만, 이걸 회화적으로 풀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장난감 종류에 고양이 그림을 접목시킬 건데, 이를테면 오뚜기 인형과 고양이를 100호짜리 캔버스에 그리는 거죠. 그림에 들어가는 소품이나 패턴에 빈티지 요소를 접목시켜서 재미있는 회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날, 유재선의 작업실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미키마우스처럼 귀가 둥그런 모자를 쓴 고양이 쿠션이다. 작가가 정성스레 포장해준 비닐을 벗기고, 쿠션을 품에 안아본다. 볕이 잘 드는 작업실 창가를 오래 지키느라 쌓인 먼지 냄새, 햇빛 냄새가 난다. 꼭 고양이 한 마리만큼의 따뜻함과 포근함이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진짜 고양이를 품에 안은 것 같았다. 그 쿠션이 현실의 고양이와 비슷한 부피를 지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속에는 한 남자가 고양이와 함께 해온 6년의 시간이 스며 있으니까. 나는 그 추억의 따스함을 포옹한 것이다.

* 작가 홈페이지(www.jaesun-shop.com)를 궁금해하는 분이 계서서 정보를 추가합니다.
  쿠션은 수작업으로 그때그때 만드는 거라,  주문하시고 며칠 뒤에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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