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조은정의 작업실은 2곳이다. 남들은 하나도 갖기 어려운 작업실이 2곳이라니. 한데 그가 작업을 두 군데서 하는 데는 사정이 있다. 여느 도예가들과 달리, 조은정의 작업실에는 가마가 없다. 대신 집에 가마를 뒀다. 지금 쓰는 작업실 공간이 협소한 편이라, 공방 겸 작업실로 쓰는 곳에선 수강생을 가르치거나 초벌구이한 기물에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을 하고, 가마에 굽는 마무리 작업만 집으로 가져가서 한다. 가마에 불을 때지 않을 때면, 고양이들이 전망대 삼아 창밖을 보는 캣타워로도 쓴다. 가마를 보호하는 철제 앵글에 마끈을 감아 발톱긁개를 만든 모습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도예가의 작업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조은정은 고양이를 키울 수 없던 10대 시절 때부터 차근차근 ‘고양이 가족계획’을 세웠다.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 검은 줄무늬 고양이, 노란 고양이. 이렇게 4마리로 1세대 구성이 끝나면 5~6년 터울을 두고 2세대 고양이를 그만큼 데려올 계획이었다. 나이 든 고양이들이 언젠가 떠나도 쓸쓸하지 않게, 마음의 보험 같은 의미로. 하지만 가족계획이란 게 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어서, 1997년부터 한 마리씩 데려온 고양이가 11마리로 늘었다.

어떤 이는 조각보를 만들거나 십자수를 놓으면서 마음을 비운다는데, 그는 고양이를 돌보며 시름을 잊은 모양이다. 1997년 첫 고양이 양양을 들일 무렵이 그에게는 가장 힘겨운 때였다. IMF로 아버지 사업이 잘못되면서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고, 집도 없이 언니와 단둘이 서울에 남겨졌다. 일주일을 남의 집 신세를 지다 간신히 머물 곳을 구했지만, 살 이유를 잃은 사람처럼 멍하기만 했다. 그 무렵 데려온 고양이가 양양이다.

“언니 친구 아버지가 대문 옆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몰래 꺼내오셨대요. 가족이 다 반대하는데, 마침 딸 친구 동생인 제가 고양이를 좋아하니 이리로 보낸 거죠. 그렇게 양양과 처음 만났어요. 근데 고양이가 생기니까 밥이랑 모래를 사야 되잖아요. 그제야 회사에 나가고 일을 하는 의미가 생겼어요.” 

원하는 색깔과 무늬별로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가족계획도, 양양의 입양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1998년 2월 모란장에서 사온 둘째 고양이 메이, 역시 모란장 약고양이 장에서 “산 채로는 안 판다”는 걸 우겨서 사온 셋째 나오미, 하이텔 고양이 소모임의 입양란 담당자로 있던 시절 인연이 닿아 입양한 넷째 야로까지 4마리로 1세대 구성을 마치려던 무렵, 예기치 않은 업둥이가 들어왔다. 젖소무늬 고양이 잭, 일명 재구다.

철저히 가족계획에 입각해 고양이를 들였던 만큼, 예정에 없던 잭은 구조 후에 바로 입양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검진해보니 시신경이 거의 망가졌다는 말에 결국 다섯째로 떠안았다. 잭은 녹내장이 심해져 1년도 지나기 전에 오른쪽 안구를 적출했고, 시력이 없던 왼쪽 눈도 10살 무렵 적출 수술을 받았다.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잭은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사고를 겪거나 장애가 있는 고양이라고 해서 모두 트라우마에 시달리진 않아요. 잭은 스스로를 불쌍하다 여기거나, 앞을 못 본다고 괴로워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정도 큰일도 겪었는데, 그보다 가벼운 일에는 타격을 받지 않아’ 하는 고양이로 자라줬거든요.” 

양양부터 잭까지 5마리가 1세대 고양이였다면, 6년의 터울을 두고 얻은 2세대 고양이는 6마리다. 나오미가 6살 때 낳아준 동고비와 싱그람, 들고양이였던 노랑둥이 소목과 턱시도 무늬의 ‘개냥이’ 브즈, 여신 같은 외모를 자랑하는 호리호리한 2대 야호, 어른이 되어서도 절대동안을 자랑하는 오동이까지. 가족에게서 독립한 지 오래지만, 집에 들어서면 반겨주는 고양이 가족 덕분에 쓸쓸하지 않다.  
 

그가 만든 작품 중에는 화려한 채색 작품도 있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검은 고양이 그림이다. 어둠 속에 고양이 실루엣만 보일 때도 함께 사는 사람은 어떤 고양이인지 단번에 알아차리는 것처럼, 검은색만으로 11마리 고양이의 기억을 풀어낸 모습이 흥미로웠다. 유독 검은 고양이 그림이 많은 것을 보면, 까만 얼굴 한가운데 장난스런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내는 고양이는 작가의 분신 같기도 하다. 호리호리한 몸에 강인함을 숨긴 흑표범 여인, 또는 사람의 모습을 한 대장 고양이-조은정을 처음 만났을 때 받은 느낌이 그랬으니까.

고양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땐, 동그라미 두어 개로 머리와 몸통 위치를 표시할 뿐 밑그림 없이 즉흥적인 붓놀림으로 완성한다. 언뜻 보아 수묵화와 흡사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먹의 농담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한 붓에 그려내는 수묵화와 달리, 초벌구이를 한 기물은 습기를 잘 빨아들여 붓의 움직임이 뚝뚝 끊기기 일쑤다. 때문에 속도감 있게 그려내기도 어렵고, 채색에 쓰는 안료도 주성분이 돌가루인지라 일반 물감처럼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여느 붓과는 달리, 그림을 그릴 때 단청 붓을 사용한다. 혹시 잘못 그렸을 때는 스크래퍼로 살살 긁어내면 된다.


한데 그가 처음부터 도예 공방을 연 것은 아니었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고양이가 들어가는 물건에 관심이 많았고, 취미로 시작한 만들기가 어느새 직업이 된 것이다. 2000년경엔 고양이 쇼핑몰을 열고 쇼핑몰 창고 한쪽에 고양이 카페도 운영했지만, 당시만 해도 고양이 카페란 개념이 생소해 유지가 어려웠고, 쇼핑몰과 카페를 함께 닫아야 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도예 작업이었다.

“카페 손님 중에 혜화동에서 도예 작업실을 하는 분이 계셨어요. 저야 늘 이런저런 고양이 물건을 만들고 싶어 했으니까, 고양이 밥그릇을 만들고 싶어서 공방에 갔죠. 근데 흙으로 빚어 만드는 작업은 당일엔 안 된다고,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는 거예요. 도자 안료가 참 재밌더라고요. 어린애들 쓰는 12색 크레파스로 정물화 그리는 기분이었어요.” 
 

생활자기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인 그는 한동안 사용료를 내고 혜화동 작업실을 함께 쓰다가 2005년 독립해 공방 ‘고양이 요람’을 열었다. 몇 차례 작업실을 이전한 끝에, 최근 새로 옮긴 작업실에서는 그릇에 그림도 그리고, 고양이 그림이 담긴 가방 등 생활용품도 만든다. ‘야호메이’라는 브랜드 네임으로 꾸준히 고양이 아트상품을 만들 생각이다. 이 브랜드명은 그가 키웠던 고양이들의 이름을 딴 것이다. PC통신 시절부터 온라인상에서 써온 야호메이, 혹은 메이라는 닉네임이 이젠 본명보다 더 친숙하다.  
 
“제가 만드는 게 생활자기잖아요. 그러니 작품으로 인정을 못 받을 때가 많아요. 아무리 멋지게 만들어도 머그컵 하나에 3, 4만원 쓰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다고 가격을 비싸게 붙이지도 못하죠. 너무너무 갖고 싶은데 가질 수 없는 그 마음을 알거든요. 나부터 ‘됐어, 살 수 없으면 만들지 뭐’ 하는 마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건데, 비싸게 받을 수 없더라고요.”

고양이와 관련된 작업이라면 뭐든 신나게 몰입하는 그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작업이 있다. 아는 사람에게서 고양이 유골함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다. 오래 전 고양이 모임에서 친해졌다가 한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가 갑자기 연락해올 때면, 혹시나 싶어 가슴이 철렁하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온 것도 벌써 13년째니, 그 무렵 알게 된 친구들의 고양이가 노년기를 맞이하고 하나둘 세상을 뜨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인지 모른다.


문득 듣는 ‘아는 고양이’의 부고는, 조은정의 1세대 고양이들 역시 점점 나이 먹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기도 하다. 친구의 고양이를 위한 유골함을 만들면서, 조은정도 언젠가 고양이들에게 찾아올 죽음을 수없이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만성 신부전으로 앓아온 양양이 2009년 6월 세상을 떠났을 때도, 같은 해 12월 재구가 양양 곁으로 갔을 때도 그들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고로 고양이가 죽거나, 고양이를 잃어버려서 생이별한 친구도 있거든요. 그때 느낄 감정이 어떤 건지 아니까…. 차라리 나이 먹어서 노환으로 죽은 게 어쩌면 축복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슬픔 속에서도 기쁨이 있다면 그런 거겠죠. 그거라도 있어야지, 그것도 없으면 어떻게 버텨요.”

태어날 때 함께하진 못했더라도, 마지막 순간은 최선을 다해 함께했다는 확신이 있기에 견딜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만큼이나, 죽음을 애도하고 극복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사별은 누구에게나 깊은 슬픔을 남기지만, 함께 사는 고양이의 죽음이란 그에게 ‘상실’보다 ‘완성’에 가까운 의미가 아닐까 싶다.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삶의 정점”이라 했던 로버트 풀검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목사였던 로버트 풀검은 <내 인생의 여섯 가지 신조>라는 글에서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웃음이며,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걸 나는 믿는다”고 썼다. 나 역시, 그의 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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