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귀 끝부터 꼬리까지 흐르는 매끄러운 곡선은 그 자체만으로 유혹적이다. 도예가 김여옥 씨는 고양이 몸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선에 반해 고양이의 모습을 흙으로 빚기 시작했다. 유혹을 상징하는 화려한 양귀비꽃을 곁들여서. 그래서 그의 작업실 이름도 파피캣(poppycat)이다.

종로구 계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김여옥 씨의 전시를 찾아가자, 한옥을 개조해 만든 아담한 전시 공간 안팎으로 검은 고양이들이 와글와글하다. 기와를 얹은 담벼락에 몸을 누이고 낮잠 자는 녀석, 나비를 잡느라 까치발로 뛰는 녀석, 창 너머를 고요히 바라보는 녀석. 고양이 털빛은 하나같이 검은 듯 푸르고, 잿빛인가 싶다가도 은빛을 띤다. 따스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도는, 딱 잘라 무엇이라 규정하기 힘든 색이다.  

잿빛인 듯, 은빛인 듯 은은한 러시안 블루
“고양이 작업의 첫 모델이 된 아이가 러시안 블루 고양이였어요. 처음 봤을 때 몸의 선이나 빛깔이 너무 예쁜 거예요. 감자떡 빛깔 아시죠? 딱 그 색이었어요. 그래서 고양이 이름도 감자떡을 줄여서 ‘감자’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감자와 함께 살기 전에는 얼룩무늬 고양이 ‘땅콩’과 ‘오이’를 키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고양이를 모델로 작품을 만들 생각은 못했다. 그러나 5년 전쯤 집에 들인 셋째 고양이 감자는 그에게 영감을 주는 소중한 모델이 됐다. 본격적으로 고양이를 빚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대학원 재학 시절 그는 라꾸(raku)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가마에서 기물을 구워 약 1000℃가 될락 말락 할 무렵, 뜨거운 상태의 기물에 톱밥을 뿌리고 연기가 스며들게 하는데, 이런 과정을 ‘연(煙)을 먹인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기와도 ‘꺼먹이 소성’이라고 해서 라꾸와 비슷하게 연을 먹이는 건데요. 라꾸와 꺼먹이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연을 완전히 흡착시키는 방식이에요. 그러려면 기물의 기공이 열려 있어야 하는데, 뜨거울 때 꺼내야 해서 연기가 굉장히 많이 나요. 그래서 서울 시내에서, 그것도 지하 작업실에서 라꾸 작업을 하기는 어렵죠. 대학원 졸업 후에 라꾸와 비슷한 느낌을 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고온 소성이 가능하면서도 원하는 색을 낼 수 있는 산화물을 찾았어요.”

 

이렇게 신비로운 빛깔의 검은 고양이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태어날까. 상수동에 위치한 작업실로 자리를 옮긴 김여옥 씨가 시범을 보인다. 습기가 마르지 않게 비닐봉투에 담아둔 흙을 돌판 위에 펼쳐 여러 번 치대고 밀대로 밀어 일정한 두께로 편 다음, 모눈종이에 그린 기본 도안을 흙반죽 위에 얹고 고양이의 실루엣대로 윤곽을 도려내어 손으로 가장자리를 매끈하게 다듬는다. 고양이의 근육과 표정을 생각하며 조형하는 이 과정을 작가는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가마에 굽는 소성 작업이 남아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큰 가마와 작은 가마가 각각 하나씩 있다. 큰 가마에는 본 작품을 굽고, 작은 가마는 ‘시편(試片) 가마’라고 해서 구워진 흙의 빛깔이나 유약 색을 시험할 때 쓴다. 작업실 개수대 위로 나란히 걸린 알록달록한 시편들은 다양한 유약 시험의 결과물이다. 그는 기물 원형에 금이 가거나 휘어지지 않는 한, 10번이건 20번이건 유약을 다시 칠해서 원하는 색깔이 나올 때까지 굽는다고 한다. 유약이 겹쳐지면서 밑에서 색이 올라오는 효과 때문에 더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묵직한 뚜껑을 위로 들어 올리니, 우물처럼 깊고 넓은 가마 속에 살구색 피부의 고양이가 한 쌍 잠들어 있다. 초벌구이여서 아직 색이 입혀지지 않은 상태다. 반죽 상태의 거무죽죽한 흙이 구워지면 이렇게 산뜻한 빛깔로 변한다.

언제나 꿈꾸는 고양이
김여옥 씨가 만든 고양이에게서는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뒷모습이거나, 정면에서 본 모습이 있어도 꿈꾸는 듯 눈을 감고 있다. 그가 고양이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인 눈동자를 묘사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눈이래요. 반짝이는 고양이의 눈을 보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사악해 보인다고까지 말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친근감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고양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바람 냄새를 맡을 때의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럴 때의 고양이는 바람 속에서 뭔가 정보를 얻는 것 같기도 하고, 사색하는 느낌도 들잖아요. 굳이 눈을 표현하지 않아도 고양이의 몸 자체가 워낙 선이 아름다워서, 그런 실루엣을 강조한 작품을 만들었죠.”
 
다섯 마리 고양이가 가르쳐 준 가족의 의미
김여옥 씨는 땅콩, 감자, 오이를 떠나보내고 현재 고구마, 누룽지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작품의 모델로까지 삼게 된 작가는,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살았던 다섯 마리 고양이들이 전해준 깨우침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다. 시어머니가 고양이와 함께 한 시간을 담으라며 선물해준 ‘육묘앨범’에는, 그와 함께 부대끼던 고양이들의 성장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뭉클하다. 김여옥 씨는 고양이에게서 빠진 젖니까지도 고이 앨범 속에 붙여두었다.  
  
“책임져야 할 대상이 생길 때 사람들은 좀 더 힘을 내서 살잖아요. 그전까지는 고양이에게 짜증도 내고 화낼 때도 있었는데, 새로운 아이를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후회도 많았고 많은 것을 배웠어요. 오이, 땅콩, 감자를 보내고 나서 저도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 내가 애정을 쏟고 관심을 주는 만큼, 그들도 그만큼 내게 사랑을 주고 웃게 만들어준다는 걸 알았어요.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게 가족이잖아요. 가족은 인연인데, 그런 가족을 만들어준 인연이 참 소중하죠.”

고양이에게 날개를, 고양이에게 자유를
흙으로 고양이의 실루엣을 빚어내는 작업을 계속하는 동안, 작품에도 변화가 생겼다. 고양이 홀로 있던 작품에 ‘창’이 추가된 것이다. 창밖의 세계를 그리운 듯 바라보는 고양이를 만드는 작가에게, 창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선인 동시에 다른 세상과 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고양이 특유의 호기심과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네모난 창 하나에 고스란히 담긴다.

또 다른 변화는 먼 곳을 그리운 듯 바라보기만 하던 고양이의 등에 날개가 솟아났다는 점이다. 꿈꾸는 고양이의 몸에서 둥실 솟아나는 상상 속의 날개는, 깃털이 아닌 양귀비 꽃잎으로 만들어진 금빛 날개다.  

“양귀비도 야생화이기 때문에 길고양이 같은 야생의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면도 있고요. 또 호기심 많은 고양이에게 날개가 생기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나 싶기도 해요. 가고 싶은 곳도 자유롭게 갈 수 있고, 위험하면 빨리 숨을 수도 있고. 그런 고양이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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