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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마음을 치유하는 고양이의 매력-고양이 화가’ 이경미를 만나다라는 리뷰에서

소개해드렸던 이경미 작가 개인전이 10월 14일까지 열린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무한을 상징하는 바다와 우주로 모험을 떠났던 고양이 '나나'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함을 안고 찾아간 카이스갤러리에서

입체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난 나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하 1층에 전시된 설치작품 <You Don't Own Me>부터 먼저 살펴봅니다.

 

 

크고 작은 유리병 위에는 각종 동물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병 위에 그려진 탓에, 마치 동물들이

마법에 걸려 병 속으로 쏙 들어간 것 같은 느낌마저 주는데요. 수집한 것들을 담는 수장고이기도 하지만
 
마치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포르말린에 담긴 동물들의 육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미 한번 죽었지만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수집됨으로써 영원히 살게 되는 것. 그래서

작가에게는 이 공간이 '기억의 자연사박물관'과 같은 곳이 아닌가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선반은 작가가 수집한 것들의 저장고이자, 동시에 지구로 대표되는 현실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병에 그림을 그려왔다고 합니다.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려진 동물들은

병 속에서 가만히 현실세계를 응시하면서 무언가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 그들의 모습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갖고 싶어 했으나 가질 수 없었던 수많은 욕망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설치작품에는 수많은 은박풍선이 등장합니다. 작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생업으로 

가장 오래 하셨던 직업이 은박풍선 판매였다고 하는데, 이 풍선들은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날아온 것입니다. 우주복을 입은 나나 덕분에, 하늘에 수없이 떠 있는 은박풍선들은

그냥 풍선이 아니라, 먼 우주에서 빛나는 수없이 많은 별들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우주복을 입은 고양이 나나는, 어느새 무중력공간이 된 갤러리 바닥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올라 

눈앞에 떠 있는 하트 풍선을 붙잡으려 합니다. 고양이가 관심있는 것을 보고 붙잡으려 할 때

동공이 까맣게 확 커지듯, 나나의 동공도 동그랗게 열려 있습니다. 지구를 떠나 우주로 몸을 던질 때에는

두려움도 망설임도 있겠지만, 고양이는 개의치 않습니다. 오직 눈앞의 잡고 싶은 것을 향해 몸을 던집니다. 

나나의 도약이 불안하기보다 통쾌하고 속시원한 이유도 그것입니다.

 


 

 

뛰어오른 나나의 뒤로 언뜻 보이는 이경미 작가의 자화상을 부분확대해 봅니다.

반려고양이 나나와 자신을 동일시해온 작가는, 자화상 역시 우주인의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왼쪽 팔뚝에는 노랑고양이 나나의 얼굴이 그려진 것이 재미있습니다. 설치작품에서 하늘로 뛰어오른

우주인은 고양이 나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작가와 동일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Just go>(2011)

이 작품의 제목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문을 열면 또 다른 세계가 있고, 그 경계를 넘어서면 또 다른 세계가 무한히 계속되는 방 안에서

고양이 나나는 탐험을 계속합니다. 이 그림은 설치작품의 옆면을 촬영한 것인데, 이어지는 문 그림의 끝에는

진짜 문이 있고, 안쪽으로는 빈 공간이 있어서, 프로젝터를 통해 눈 내리는 바다의 영상이 펼쳐집니다.
 

 


설치작품 외에 회화 작품도 함께 전시되고 있습니다. 위 그림은 <Where do You go after You have been to the Moon>입니다.


M.C.에셔를 연상케 하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착시화로 '무한과 영원의 공간'을 그렸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뒤 다문화를 경험하며 얻은 영감을 곳곳에 반영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아래의 <미금역>입니다.

그림 <미금역> 속에 등장하는 건물군들은 왼쪽부터 홍콩, 미국, 한국, 런던, 일본의 건물과 간판입니다. 

책상에 쌓인 책의 형태에서, 자연스럽게 건물의 덩어리로 옮겨가는 전개방식은 그대로이지만

책상 위에 펼쳐진 공간은 보다 광대해졌습니다.  

원래의 부제는  "Most of us don't know what we want unless we see it in context"였다고 합니다.

 

 

 

위 그림의 부분도인데요, 작가의 분신인 고양이 나나의 모습을 이곳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25개의 은박풍선 그림으로 구성된 <Inferno>는, 단테의 <Inferno> 중에서 인용한 다음 문장이 

각각의 풍선 속에 나뉘어 들어가 있습니다.

"I have no genius, no mission to fulfill, no great heart to bestow,
I have nothing and I deserve nothing.
Yet in spite of it, I desire some sort of recompense."

은박풍선은 아름답지만 영원하지 않지요. 마치 사람이 서서히 죽는 것처럼 공기가 빠져 시들어버리니까요.

은박풍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물인 양 아꼈던 아이들은, 풍선에 바람이 채 빠지기도 전에

잊어버립니다.

 

 

연작인 <Two Gods and Astronaut I>, <Two Gods and Astronaut II>입니다.


왼쪽은 이스탄불의 소피아 하기아 성당의 내부를, 오른쪽은 외부를 그린 것이라고 하네요.


<Two Gods and Astronaut I> 중 일부입니다. 체스는 축약된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체스의 말은 1층에 전시된 병 그림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체스말의 받침으로 쓰인 술병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작가와 반려묘들의 근황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이경미 작가와 남편분의 얼굴, 그리고 나나, 랑켄, 바마, 주디 순으로 그려져 있네요. 

주디는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 입양한 넷째 고양이입니다. 유기동물 보호소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보호소에서 주기적으로 '입양의 날' 행사를 한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그냥 한번 가서 구경만 할 생각이었지만, 그때 이경미 작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친근감을 보이며 안겨오던 주디를 외면할 수 없어 그만 덥석 안아오고 말았답니다.

나나쨈에 그려졌던 나나의 모습 외에도 랑켄과 주디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가운데 십자가 모양으로 배치된 고양이는 나나, 약간 샐쭉한 표정의 진회색 고양이는 랑켄,

그리고 빤히 바라보는 회갈색 고양이가 주디인 듯하네요.

 


이번 전시는 10월 14일까지 서울 청담동의 카이스갤러리에서 열립니다.

평일엔 오전 10시~오후 6시 반까지, 토요일은 오전 10시 반~오후 6시까지 열고,

일요일에는 갤러리 휴관이라고 하니, 방문하실 분은 참고하세요.  

http://www.caisgallery.com/v2/exhibition/exhibition.php?id=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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