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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고양이집 고양이의 근황

by 야옹서가 2005. 3. 28.
지난 가을쯤, 안국동 고양이집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고양이집은 안국동 아름다운가게 맞은편에 있는 구멍가게에 대해 내 마음대로 이름붙인 것이다. 제일 나이를 많이 먹은 듯한 삼색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좀 더 어린, 비슷한 또래의 황토색 얼룩고양이 세 마리-이렇게 네 마리가 뒹굴뒹굴 하면서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곤 했는데, 간혹 구멍가게에서 천하장사 소세지를 사다 먹이는 사람들로 구멍가게의 매출도 조금은 올라갔을지 모른다. 아마도 고양이집 주인과 네 마리의 고양이는 암묵적인 동의 하에 화목하게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지난 겨울 내내 그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오늘 정독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고양이집 고양이들의 소식을 들었다. 원래는 다섯 마리가 있었는데, 누군가 쥐약을 놓아 세 마리는 죽고 두 마리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 무리 속에 한 마리가 더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떠돌이처럼 혼자 다니던 덩치 큰 녀석 한 마리가 있었던 것도 같다.

살아남은 두 마리는 고양이집 주인이 마련해준 좁은 그늘에 숨어 지내고 있었다. 덩치가 컸던 삼색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황토색 얼룩고양이 중 한 마리다. 얼룩고양이는 딱하게도 심한 눈병에 걸려 있었다. 예전의 세 마리가 워낙 비슷하게 생겨서 어떤 녀석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두 눈에 눈꼽이 잔뜩 끼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뿐더러 눈알도 삭아들어간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었다. 아마 쥐약의 후유증인지도 모른다. 예전의 새초롬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사람을 봐도 시큰둥한 모습이 죽지 못해 사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 고양이의 모습을 사진 찍으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아서 그냥 돌아오긴 했지만,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그 고양이도 길고양이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은 아닌데... 한때 귀엽다고 키웠다가 내버린 인간들이 책임지지는 못할망정, 마구잡이로 죽이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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