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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함과 진실함’을 추구한 화가를 키운 곳-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오래된 돌담처럼 질박한 느낌의 유화로 사람들을 그렸던 화가 박수근. 향토색 짙은 그림에는 한국전쟁 이후 고난의 시기를 묵묵히 견뎌온 세대의 삶이 서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화가의 생가 터인 강원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에 자리 잡은 박수근미술관은 그러한 화가의 정신을 이어가면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2002년 10월 개관한 박수근미술관은 외관부터 여느 미술관 건물과는 다르다. 불규칙하게 잘라낸 화강암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외벽은 화가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투박한 질감을 그대로 옮겨냈다. 멀리서 보면 미술관 외벽 전체가 마치 화가의 그림을 커다랗게 확대한 것처럼 느껴진다. 건축가 이종호 씨가 설계한 미술관 건물은 박수근의 회화에 담긴 화강암의 질감을 건축 미학으로 승화시킨 점을 높이 평가받아 2002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소개되기도 했다. 화강암으로 소박하게 단장한 미술관 외벽 옆으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낮은 돌담이 이어지고 있다. 여느 미술관은 관람객이 입구로 바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동선을 고려해 설계하지만, 박수근미술관은 오히려 입구까지 도달하는 길을 빙 돌아가게끔 만들어 시간을 지연시킨다. 관람객이 미술관 입구까지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박수근과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끔 설계한 것이다.


돌담길을 타박타박 걸어 미술관 앞까지 다다르면 미술관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박수근 동상과 마주하게 된다. 이 역시 여느 기념비적인 동상과는 다른 모습이다. 실물보다 약간 더 큰 동상은 가만히 무릎을 감싸안고 미술관 입구를 바라보고 있다. 바로 옆에 살며시 놓아둔 화구를 집어 들고 일어설 것처럼 친근하다. 미술관 앞에는 화가의 그림속 빨래터를 재현한 듯한 실개천이 흐르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박수근이 창작의 원천으로 삼았던 고향, 양구
박수근미술관이 터를 잡은 강원 양구군은 남북을 모두 아우른 우리 국토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한반도의 배꼽’으로 불린다. 그중에서도 화가의 고향 마을이 있는 정림리는 해발 1198.6m의 사명산이 든든하게 마을을 받쳐주고, 마을 앞으로는 서천西川이 흐르는 고즈넉한 산골이었다. 강원도의 맑고 깨끗한 자연을 놀이터 삼아 자라난 산골 소년 박수근이 늘 보았던 것도 화려한 도시가 아닌 고향의 산과 들판, 나무와 시냇가 같은 자연 풍경이었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그에게 창작의 원천이 되어준 것은 때 묻지 않은 양구의 자연이었던 셈이다.


박수근의 그림에서 무채색에 가까운 차분한 색감의 유화물감을 겹겹이 쌓아올려 만든 우둘투둘한 그림 표면은 고향의 흙과 바위를 닮았고, 굵고 힘 있는 선으로 단순화된 인물 군상은 그가 매일같이 보며 자란 가족과 순박한 이웃의 얼굴이었다. 고향을 떠나 춘천에서 자취생활을 할 때도,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로 상경해 작품 활동을 할 때도 박수근의 뇌리에 남은 그 영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박수근의 그림이 태어난 배경을 이야기할 때 고향인 양구에서의 기억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양구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열두 살 때 농민화가 밀레의 원색 도판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박수근. 그는 이미 그 무렵부터 홀로 학교 뒷동산에 올라 커다란 느릅나무를 그리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그가 즐겨 그린 대상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목裸木이었다. 너무 일찍 삶의 고단함을 알아버린 소년은, 힘겨웠던 그 시절 자신의 마음 풍경과 꼭 닮은 말라붙은 나목을 바라보며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상급학교로 진학하지는 못했지만, 일찍이 겪은 인생의 고난은 낮은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행상을 나선 여인들, 일하러 나간 엄마 대신 동생을 업어 키우던 소녀, 일자리를 찾아 거리로 나와 쭈그려 앉은 중년 사내 등 박수근이 그린 인간 군상은 고난 속에서도 의지를 잃지 않고 삶을 견뎌낸 사람들이었다.

 

박수근은 예술가란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고 밝힌 것은, 그렇게 평범한 우리네 이웃과 가족의 모습 속에 자신이 찾는 선함과 진실함이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의 혼란기, 한국전쟁 등 격동의 시간을 견디며 묵묵하게 살아온 서민의 삶을 정감 어린 그림체로 표현해냈기에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박수근의 그림은 널리 사랑받는 게 아닐까.

 

화가의 삶을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기념관과 전시관
박수근미술관은 그런 화가의 정신을 오롯이 담은 곳이다. 1층 기념전시관에서는 박수근의 삶을 요약한 영상물을 상시 상영하면서, 화가의 일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담은 사진과 관련 인물들의 글로 벽 한 면을 장식하여 화가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기념전시관에는 화가가 생전에 쓰던 안경과 돋보기 등의 유품을 비롯해 기증받은 유화 소품‘ 비둘기’와‘ 굴비’, 화가가 평소 그렸던 연하엽서 등도 함께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제1기획전시실 한쪽에 마련된 상설전시 작품을 통해 서민적인 풍경을 즐겨 그린 박수근의 작품 세계를 살필 수 있다. 유화 소품이나 수채화 등의 그림 외에도 올록볼록한 질감이 있는 물체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질러 질감을 옮겨내는 프로타주(frottage) 기법을 표현한 소품 등에서, 박수근이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면서도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음을 볼 수 있다.

 

미술관 밖 옥외 휴게공간 입구를 거처 뒷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화가 부부가 합장된 묘소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호젓한 산길을 따라 십여 분쯤 걸으면 아담한 봉분이 눈에 들어온다. 중매결혼이 대세였던 당시, 낭만적인 연애편지를 보내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화가는 사후에도 가장 사랑했던 아내와 함께 잠들었다. 부부의 묘를 지키는 그림 비석에는‘ 서민화가庶民畵家박수근朴壽根기념비記念碑’라는 글귀와 함께, 아내가 가장 좋아했다는‘ 아기 업은 아낙’의 드로잉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박수근미술관과 박수근 마을까지 두루 둘러보았다면, 미술관에서 자동차로 6분 정도 거리에 있는‘ 박수근 나무’도 찾아가보자. 현재 양구교육지원청이 자리 잡은 자리가 바로 박수근이 학창시절을 보낸 옛 양구보통학교 부지인데, 이곳에는 박수근이 화가를 꿈꾸던 시절 틈틈이 즐겨 그렸다는 수령 300여 년의 느릅나무 두 그루가 아직도 건재하다. 어린 시절의 박수근이 뒷동산에 올라 앙상한 나뭇가지를 꼼꼼한 손길로 그려냈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화가의 대표작 속에 남겨진 나목의 원형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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