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여행 중에 만나는 길고양이들의 사진을 틈틈이 찍어둔다. 세계 곳곳에서 길고양이가 살아가는 다양한 환경을 사진으로 기록해두면서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기도 하고, 개인적인 여행의 추억이 되기도 하니까. 그러나 늘 고양이의 사진을 원하는 대로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동네에서는 길고양이를 전혀 만나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정작 고양이를 만났어도 경계심이 강해 찍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길고양이가 나를 보고 달아난다고 해서 곧바로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달아나는 길고양이는 꼭 한번쯤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자기를 위협할 것 같지 않으면 필요 이상으로 멀리 달아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길고양이 사진 찍기가 시작되는 것도 이 시점부터다.

 

달아나는 고양이가 나를 돌아보면서 골똘히 생각에 빠지기 전에, 먼저 고양이와 비슷한 키가 되도록 땅바닥에 앉는다. 우뚝 서서 어정거리는 사람을 관찰할 때와, 몸을 낮추고 추격할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볼 때의 고양이 눈빛은 달라진다.

 

그러면 길고양이도 몸을 낮추고 내 쪽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바라본다. 아까보다는 한결 경계심이 풀린 표정이지만, 그래도 완전히 마음을 놓은 것은 아니다.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고양이가 잠시 나와 눈맞춤을 하는 동안 사진을 찍을 짬이 생긴다.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다시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사잇길로 종종걸음을 치며 숨어든다. 고양이가 안심할 듯 말 듯하며 마음을 졸이게 만든다면, 완전히 떠나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근처에 앉아 기다려주는 편이 좋다. 그러면 고양이도 궁금한 듯이 다시 이쪽으로 다가오곤 하니까. 사람만 길고양이의 일상이 궁금한 것이 아니다. 길고양이 역시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흠...저건 도대체 뭘 하는 닝겐일까?" 골똘히 생각에 빠진 이누야마 고양이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길고양이의 마음은 대개 호기심과 경계심 사이에서 왔다갔다하기 마련. 경계심이 앞서는 길고양이는 달려갔던 그 길의 끝에 숨어 나오지 않을 테고, 호기심이 앞서는 길고양이는 달아났다가도 눈치껏 돌아와 다시 이쪽을 관찰한다.  재미있는 사진이 나오는 건 이때다.

고양이가 약간 방심한 틈에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나도 마음 편한 상태에서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고양이의 눈높이에 맞춰 몸의 자세도 낮춰둔 상태. 덕분에 고양이가 뒹굴뒹굴 등을 바닥에 비비며 장난치는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너는 왜 나를 잡으러 오지 않는거니? 무슨 속셈이 있는 거야?" 길고양이가 묵묵히 나와 눈맞춤을 하며 말을 건넨다. 이렇게 눈맞춤을 해주는 길고양이를 만난다면, 그리고 이 단계까지 올 수 있다면 내게는 운수 좋은 날이다. 

 

해를 끼치지 않을 인간이구나 하고 판단했던지, 길고양이는 고양이만  다닐 수 있는 좁은 샛길에서 나와 자리를 뜨는 나를 배웅해준다. 주차된 자동차 앞에 고양이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친다. 덕분에 고양이 샛길에서 찍은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사진을 한 장 더 찍어 갈 수 있었다.

 

고양이 여행 중의 길고양이 사진은 대개 이런 순서로 촬영된다. 멀리서 고양이를 발견하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따라잡고, 달아나도 포기하지 않고 멀찍이 앉아 기다리고, 고양이가 경계심을 풀 때까지 또 기다린다. 고양이의 성향에 따라 어느 단계에서 촬영이 중단되기도 하고, 이 날처럼 몇 번의 '밀당'을 거쳐 인상 깊은 장면을 찍기도 한다. 여러 장을 찍어도 사진의 결과물 몇 장만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길고양이 사진을 찍는 과정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여기는 분들이 있어 소개해본다. 

 

우연히 길고양이를 만나는 시간은 이동 일정에 고려되지 않은 것이어서 '밀당'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다음 일정에 조금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길고양이의 만남은 단 한 번뿐인 인연이기에, 언제나 같은 곳에서 나를 기다릴 유적지나 고양이 명소를 돌아보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다. 고양이 여행에서 길고양이와의 만남에 비중을 두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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