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복전 부대행사로 열린 강연회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혹시나 길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본다. 10여 년 전 처음으로 웹진 기자 일을 시작한 곳도 이 동네였다. 일부러 길고양이를 찾아나서기보다는 취재 차 카메라를  들고 나선 김에, 오며가며 눈에 띄는 녀석들을 무심코 찍곤 했다. 대로변에서 볼 때는 상업시설만 가득한 것 같은 혜화동이지만, 주택가 쪽으로 접어들면 익숙한 번잡함과 또 다른 풍경이 있다. 길고양이가 숨어드는 곳도 이렇게 골목 많은 동네다.  

 

골목을 오르내리다 보면, 담벼락 아래로 훌쩍 뛰어내리며 달아나는 고양이를 간혹 만날 수 있다. 오래된 골목이 변하지 않듯, 동네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들도 꾸준하다.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도시의 팍팍한 환경에 적응하고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낸다.

 

그대로 달아날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고양이가 성큼성큼 걸어 내게로 온다. 내 발치에 몸을 부비더니 큰길에 떡 하고 드러눕는 게 아닌가. 아마도 근처에 밥을 챙겨주는 분이 있어 사람에게 익숙해진 고양이가 아닌가 싶다. 이런 때는 뭔가 맛있는 것을 내놓으라고 무언의 요구를 해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강연회에 늦지 않을 것만 생각하고 길고양이를 만나러 나서는 일정은 예정에 없던 터라 미안하지만 빈손이다.

 

 내가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하니 샐쭉해진 고양이는 마징가 귀를 하고서 눈도 마주쳐주지 않는다. 뒷다리를 쭉 펴고 누운 것을 보니 뭔가 먹을 것을 내놓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기세다.

위 사진은 길고양이가 달아날까 싶어 조심스럽게 다가가느라 몸을 많이 낮추지 못한 상태로 찍었다. 그러니까 엉덩이를 땅에 붙이지 않고 어정쩡하게 웅크린 상태인 것. 녀석이 웬만하면 일어날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가 되어서야 나도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사진과 방금 전의 사진을 비교해보면 느낌이 미묘하게 다르다.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점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지대가 높은 동네에서 길고양이를 찍을 때, 지형 특성을 살려 사진 찍는 요령이 있다. 가급적 고양이가 비탈길에 있을 때 고양이의 아래쪽 길에 앉아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러면 주인공인 길고양이가 전면에 부각되면서도 뒤 풍경을 한눈에 보이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요령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건 모델이 되어주는 고양이의 태도다. 사람을 너무 많이 따르는 고양이는, 사진을 찍어보려고 내가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자꾸만 앞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사진 찍을 수 있는 거리가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경계심 많은 고양이는 사진 찍을 틈도 주지 않고 달아나버려 곤란하다. 그래서 길고양이를 찍을 때 가장 고마운 녀석은, 내게 너무 친근하게 다가오기보다 그저 멀뚱멀뚱 구경하고 있는 녀석들이다. 나를 의식하지 않고 무심한 듯 태연하게 있을 때의 모습이 길고양이의 일상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출간!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