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인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에는  '실레이야기길'이라는 문학여행길이 있다. 그의 소설에 묘사된 이야기들 중 일부가 도보여행길로 되살아난 것인데,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 등 총 16가지 길이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해학적인 길 이름만 들어도 김유정 소설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길을 걷는 것도 재미나지만, 내겐 고양이를 만날 수 있어서 더 즐거웠던 길이다.

 

김유정문학관에서 마을 쪽으로 이어지는 실레이야기길 곳곳에는 이렇게 나무로 깎은 솟대가 우뚝 서 있어서 여행길의 정취를 더한다.

 

솟대에 눈이 팔려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저 멀리 목제 데크 쪽에 몸을 숨기고 먼 곳을 바라보는 코팩이를 발견했다. 콧잔등 부분만 얼룩무늬가 있는 녀석을 가리켜 애묘인들은 흔히 '코팩이'라고 부르는데, 녀석도 그런 고양이였다. 코팩 색깔이 진흙빛인 걸로 보아 머드팩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몸을 숨기고 기척을 내지 않고 있으면 사람들도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는 것이 이 동네의 일상인 듯... 이번에도 그냥 무심코 지나치겠거니 하고 나를 빤히 지켜보던 고양이는, 예상이 빗나가서 당황했는지 "오옹?" 하고 동그래진 눈을 들어 이쪽을 바라본다.

 

목제 데크 근처는 평소 고양이들의 휴식처로 이용되는지, 코팩이만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고 동료 고양이들도 제법 만날 수 있었다. 두 뺨이 불룩한 걸 보니 제법 나이를 먹은 수컷 왕고양이인데, 왜 나를 귀찮게 깨우느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압권이다.

 

함께 사는 길고양이들 대부분이 통통하게 살이 붙은 데다가 털옷 상태도 좋은 걸로 보아, 먹이 환경이 좋은 장소를 확보한 녀석들이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건물 주인이 데리고 살던 고양이를 버리고 간 모양이라며 그 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기 시작한 것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코팩이는 아직 어린 걸 보면, 새로 태어나 이곳의 길고양이 무리에 합류한 모양. 요즘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은 원래부터 길에서 태어나는 녀석이 대부분이지만, 이렇게 버려져서 근처에 정착한 녀석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실레이야기길을 다녀온 지도 벌써 1년 전 일이니, 코팩이도 무사히 살아남았다면 지금쯤 어엿한 어른 고양이가 되었으리라 싶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찍어본 김유정역. 역사가 기와집 모양으로 독특하다. 경춘선이 전철 구간으로 들어오면서 교통비도 많이 들지 않아서 가벼운 나들이 삼아 다녀오면 편리하다. 근처 김유정문학관이 있으니 연계해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문학여행길'이겠지만, 내게는 '고양이여행길'이었던 춘천 실레여행길의 추억을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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