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별궁길에는 길고양이가 지키는 매점이 있다. 이 일대가 별궁길로 불리기 훨씬 전부터 길고양이는 이 언저리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골목의 역사만큼 매점 고양이의 역사도 깊다. 우리 가족이 안국동에 처음 정착해 살던 무렵 내가 고양이집이라고 부르던 매점이 있었다. 집 근처에 작은 매점이 세 군데나 있었지만 그곳을 자주 찾았던 건 역시 고양이를 키우는 할머니가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서 고양이를 키울 수 없었기 때문에, 고양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그 가게였다.

 

한갓지던 이 동네1990년대로 접어들며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작고 오래된 가게를 운영하던 사람들은 치솟는 월세에 문을 닫았고, 그런 가게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관광객 대상 음식점과 찻집이 들어섰다. 좁은 골목길은 도로공사로 넓어지고 별궁길이라는 새 이름이 생기면서 거리는 이전보다 번화해졌지만, 이 동네에 오래 살며 예전 모습을 기억하던 사람들에게는 어쩐지 마음이 쓸쓸해지는 풍경이었다. 새로운 것이 들어설 때면 오래된 것들은 떠밀려 사라지게 되니까. 그 와중에도 고양이집은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고양이집 주인 할머니가 떠나고 새로 온 주인 부부는, 고양이를 가게 안에 들여 키우지는 않았지만 길고양이를 좋아했다.

 

처음 안국동으로 이사왔을 때 중학생이었던 내가 어른이 될 만큼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매점 앞에 모여들던 길고양이들도 꾸준히 세대교체를 해 왔다. 사진 속 고양이는 2004년 무렵  주로 많이 눈에 띄었던 노랑둥이 가족 중 하나다. 고양이집 앞에는 대개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는데, 녀석들은 그 아래에서 놀곤 했다. 고양이집의 모습이 자동차 표면에 반사되어 거울처럼 비친다. 아담한 가게 입구 모습은 요즘 모습과 거의 다를 바 없다.

2005년 고양이집 앞 의자에 숨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던 노랑이. 2002년 만난 '행운의 삼색고양이'가 내게 길고양이 사진을 지속적으로 찍어보도록 동기부여를 해줬다면,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고양이집 길고양이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소중한 친구들이다. 고양이와 함께하지 못했던 시절 내 마음의 헛헛한 구멍을 채워준 녀석들이었으니까.

 

2007년의 고양이집 모습. 그때는 코카콜라와 카스의 마케팅이 활발했던 듯, 가게 앞을 화려한 포스터와 광고 띠지로 장식한 것이 눈에 띈다. 벽돌로 고여놓은 음료수 진열장 아래에는 노랑이의 밥그릇이 놓여있곤 했다. 가게 주인과 안면을 튼 넉살 좋은 길고양이 몇몇은 이렇게 매점 앞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쉬다 갔다. 

고양이집에 대한 글을 쓰면서 예전 사진들을 찾아보니 알게 모르게 주변 풍경이 많이 변해왔구나 싶다. 위 사진은 2006년의 고양이집 근처 풍경. 2007년 이후에는 도로 일부에 보도석이 깔려있었지만, 2006년까지는 좁은 도로를 확장만 했을 뿐 아스팔트 그대로였다.

위 사진에서 7년 후인 2013년의 고양이집 앞 풍경. 동네 사람들을 상대하던 오래된 침구 가게가 없어진 자리엔 옷집이 들어섰다.

 

요즘 매점 앞에 자주 출몰하는 길고양이의 이름은 나비다. 흰 바탕에 노랑 얼룩무늬가 있는 수고양이인데, 꾸준히 매점 주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집고양이가 거의 다 되었다. 사진 속 얼굴은 아직 중성화수술을 하기 전의 모습. 매점 출입문 곁에는 나비의 집과 번듯한 사료통도 생겼다. 수컷답게 영역을 순찰하느라 종종 자리를 비우긴 하지만, 나비는 때가 되면 애써 찾지 않아도 매점으로 돌아온다. 

 

나비는 눈 위의 짧은 털이 살짝 처져서 눈매가 유독 옹색해 보인다. 약간 맹한 듯한 표정이라 웬만한 일에는 놀랄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인상이다. 외모뿐 아니라 실제 성품도 그렇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 고양이네하며 코앞까지 다가가 카메라를 들이대도 도망가기는커녕 뒹굴뒹굴하며 카메라를 멀뚱멀뚱 보고만 있다. 특별한 호객행위를 하지 않지만 나비는 매점 앞에 가만히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손쉽게 불러모은다.

요즘은 턱시도 무늬의 고양이 깜순이도 가세해 나비와 함께 짝패를 이루고 있다. 두 고양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우다다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고양이집은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지금 그대로 남아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든든해진다. 

 

 나비의 지정석은 매점 앞 진열장이다. 나비는 종종 이곳에 머물며 쉬곤 했다.

 

감귤주스와 망고주스 상자를 비치해둔 진열장 맨 아랫칸에는 나비가 있다. "고양이는 안 팝니다." 하고 안내문이라도 붙여놓아야 하려나. 이렇게 앉아있으니 어쩐지 나비에게 물건값을 주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안국동에 살던 시절 길고양이와 함께했던 추억을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듯, 고양이를 좋아하는 다른 누군가도 이 길을 지날 때마다 길고양이가 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될까. 나비와 깜순, 두 고양이들이 별궁길 고양이집의 상징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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