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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오래 함께 살면, 그 녀석이 ‘명품 고양이’죠-화가 노석미

by 야옹서가 2006. 6. 29.


화가 노석미-오래 함께 살면, 그 녀석이 ‘명품 고양이’죠


일상의 이야기를 친근한 그림체로 그려내는 화가 노석미(35). 그는 홈페이지에 그림 에세이 ‘나의 고양이 이야기’를 연재하는 고양이 마니아이기도 하다.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작업실 겸 집에서 네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사는 노석미를 만났다.

유림사거리에 내려 노석미가 알려준 아파트를 두리번거리며 찾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사거리 한복판으로 나가 십분 넘게 비탈길을 올라서야 저 멀리 언덕배기에 아파트가 보인다. 번잡한 서울을 떠나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늘뿐더러, 작업 공간도 넓어지고 고양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기에 굳이 동두천으로 왔다고 한다.


하긴 덩치가 듬직한 네 마리 고양이와 동거해야 하니, 넓은 공간이 필요할 만도 하다. 길고양이 출신인 삼색고양이 시로(9), 태어날 때부터 어수룩했던 시로의 아들 똘똘이(7), 시로의 또 다른 아들인 비만 고양이 후추(5), 그리고 4년 전 겨울  의정부 시장에서 주워온 길고양이 봉봉(4)까지, 네 마리가 아옹다옹 그의 집에 살고 있다. 노석미가 유독 고양이 그림을 즐겨 그리고, 또 사람들이 그의 고양이 그림에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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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상다반사적인 걸 많이 그리는 편이라 주변에서 소재를 많이 얻는데 고양이는 아무래도 제 식구니까요. 20대 중반에 독립을 하면서 데려온 시로와 8년간 함께 살았는데, 가족을 제외하면 누군가와 이렇게 오래 산 건 시로가 처음이죠. 가족이야 뭐, 자아란 개념이 거의 없을 때 부모님 보호 아래 살았던 거고….”

시로는 원래 후배가 길에서 데려다 키웠던 고양이다. 1998년 선배와 함께 시골의 낡은 주택을 빌려 작업실을 차렸다가, 우여곡절 끝에 연고도 없는 그곳에 혼자 내려가 살게 됐다. 개를 기르고는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메워준 게 고양이 시로였다.


“후배에게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고 했더니, 한 달 된 새끼랑, 길에서 데려온 1년 된 새끼(?)가 있대요. 근데 어린 애는 입양이 잘 되니까, 은근히 나이든 애를 데려갔으면 하는 눈치더라고요. 결국 성남까지 가서 데려왔는데, 개만 기르다가 고양이를 처음 기르니까 홀딱 빠진 거죠.”


어린 시절 시로는 예쁘고 영리하고 날쌨다. 한 마디로 고양이의 매력을 다 가진 고양이였단다. 각박한 도시에서라면 불가능했겠지만, 한적한 시골에 살다보니 고양이를 자유롭게 놓아기를 수 있었다. 시로는 다섯 마리의 남편을 만나 스물네 마리의 새끼를 낳고, 불임 수술을 받았다. 시로가 마지막 임신을 했을 때 일어난 러브스토리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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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미가 가장 예뻐하는 고양이 시로. 덩치는 작아도 아홉 살 된 할머니 고양이다.

“예전엔 발정 나서 집을 나가도 반나절이면 돌아오곤 했는데, 사흘이 지나도록 안 오는 거예요.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속이 타잖아요. 고양이는 낮에는 사람들 안 보이는데 있으니까 밤마다 손전등을 들고 시로야, 하고 찾으면서 다녔어요. 아마 사람들이 미친 여자인줄 알았을 거예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시로 얼굴을 알다 보니, 이런저런 증언들이 들려왔다. 누군가 ‘시로가 까만 고양이랑 붙어 다니는 모습을 봤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젖소목장 풀 위에서 두 녀석이 한가롭게 누워 있더라’고도 했다.

“‘아, 이 년이 또 사랑에 빠졌구나’ 싶더라고요. 그래도 배가 고프니까 돌아오긴 했어요. 근데 시로가 며칠 동안 창밖만 바라보는 거예요. 가만 보니 그 까만 고양이가 집까지 찾아왔어요. 원래 야생에서 짝짓기가 끝나면 다시 만나거나 하지 않는데, 그 녀석이 너무 잘 생겨서 사랑에 빠질 만하더라고요. 며칠 그렇게 ‘비련의 사랑놀이’를 하다가, 시로는 집고양이가 된 지 오래라 결국 안 따라나서고, 그렇게 둘이 헤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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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노석미의 작업실. 곳곳에 걸린 고양이 그림이 사랑스럽다.

시로의 아들인 똘똘이나 후추와 달리, 봉봉이는 노석미가 직접 길에서 데리고 왔다. 4년 전 겨울, 의정부 재래시장에서 신발 좌판 근처를 맴도는 노란 얼룩고양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신발 파는 아저씨 말로는 빈 건물에 버려진 녀석을 구조해 꺼내놓았다는데, 다른 곳에 갈 생각은 않고, 좌판이 펼쳐지면 와서 난롯불을 쬐고 가더란다. 이미 사람 손을 탄 고양이여서 추워지는 날씨에 살아남을까 걱정도 되고, 깨끗하게 씻기고 먹인 후에 입양 보내리라 결심하고 데려왔다. 하지만 봉봉이 역시 결국 그의 집에 눌러앉게 됐다.


“봉봉이는 길고양이 출신이면서도 개처럼 살갑게 굴어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 보통 낯선 사람들이 오면 다른 고양이들은 서먹해하는데, 얘는 손님이 오면 나름대로 접대를 한다고 할까, 그만큼 친절해요.”


가장 붙임성 좋은 ‘접대묘’라는 말에 혹시나 하고 손을 내미니, 마치 강아지처럼 쉼 없이 핥핥핥 핥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 정도면 고양이가 아니라 숫제 강아지다. 지금은 사랑으로 자라나 당당하고 예쁜 고양이가 됐지만, 봉봉이도 처음엔 남다른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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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봉봉이. 길고양이 출신이지만 붙임성이 대단한 접대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거든요,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이 있는 애들은. 봉봉이도 어떤 순간 보면, 정서적으로 다른 애들이랑 다른 면이 있어요. 봉봉이는 분명히 어미한테 일찍 버림받았을 거라고요. 저랑 4년 넘게 살았으니까 그런 기억도 잠깐일 텐데,  ‘꾹꾹이’라고 엄마젖 빨 때 하는 버릇 아시죠. 그게 보통 1년 내에 없어지거든요. 근데 봉봉이는 거의 3년을 갔어요. 덩치는 이만한 놈이 나한테 계속 ‘꾹꾹이’를 하는 거예요. 제 꼬리도 빨고. 그런 느낌이 드니까 너무 안쓰럽더라고요.”

 

그래서 노석미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엄마젖 먹을 만큼 먹이고 3개월 이상 됐을 때 입양해라. 어미의 따뜻함을 충분히 느낀 애들하고, 그때 애정을 충분히 못 받은 애들하고는 많이 다르다” 하고 조언한단다. 특히 귀여운 고양이 모습만 보고 “나도 고양이 한번 키워보고 싶어요”하며 무턱대고 들이대는 사람에게는 냉정해진다.

“특히 직장여성들이나 혼자 사는 여자들이 많이 기르고 싶어 하죠. 고양이랑 함께 사는 생활에 판타지를 많이 갖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고양이를 기르면 10년 이상 산다. 그동안 결혼하고 애도 낳고, 이민이나 유학갈 수도 있고, 다양한 변수가 있을 텐데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마음이겠냐, 자식을 낳을 때도 심사숙고해서 낳듯이, 입양하고 분양하는 것도 쉽게 생각할 게 아니다’ 그런 얘길 일부러 막 해요.”


그의 말마따나, 그렇게 심사숙고해서 데려온 고양이일수록 더 오래,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의 부주의나 미성숙한 사고방식 때문에 버려져 길거리 신세가 되는 동물들도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서는 동물을 사고팔기보다 유기동물 보호소 등지에서 입양해 오는 사례도 많다고 설명하니, 노석미는 “한국에서는 사람도 입양이 잘 안되는데, 버려진 동물은 더 하겠죠. 사실 고양이도 그렇지만 유기견도 걱정이에요. 유기동물 보호소를 보면 고양이보다 개가 많지 않나요?”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유기동물 입양이 활성화되지 않는 건, 이른바 ‘명품 고양이’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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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와 아들 똘똘이가 책꽂이 위에 올라가 주변을 관망하고 있다.

“사람들이 명품 좋아하듯이, 과시적으로 예쁜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 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목욕시킬 때 보면 어떤 고양이나 골격은 다 똑같아요. 러시안 블루건 페르시안이건. 명품 개, 명품 고양이 같은 건 다 장삿속으로 만들어 낸 거라고 생각해요. 뭐, 명품이 따로 있겠어요? 같이 오래 살면 그 녀석이 명품 고양이죠.”

기사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bbs1.media.daum.net/griffin/do/blognews/life/read?bbsId=B0005&articleId=11556&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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