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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포항에 도착하면 가파도와 마라도 중에 어느 섬을 가볼지 갈등하게 된다. 하지만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광고로 유명해져 거대 관광지처럼 되어버린 마라도보다는 소담한 가파도가 마음에 끌렸다. 제주올레 코스를 완주하기는 힘들 것 같고, 길을 잃거나 지칠 부담없이 가볍게 돌아볼 수 있는 올레길을 짚어보다 선택한 곳이 가파도였다. 청보리밭축제로 유명해진 섬이지만, 어머니와 내게는 '고양이 섬'의 추억을 안겨준 곳이 되었다. 제주를 여행하며 만난 녀석들 중에 가장 살가운 길고양이를 이곳에서 만났으니까. 섬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녀석 외에도 서너 마리 고양이를 더 만날 수 있었다.

 

여행을 정리하면서 돌아보니 그날 아침 가파도행 배를 선택한 것이 더 나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섬은 어머니와 내가 바랐던 대로 한적했고, 천천히 걸으며 돌아보는 여행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그날 오전 11시 배를 타고 들어갔는데 배에 탑승한 사람은 모두 30명쯤 되었을까. 각자 바라는 방식대로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며 섬을 여행한다.

 

해안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고냉이돌이 불쑥 머리를 내민다. 제주 사투리로 고냉이란 고양이를 말한다. 고냉이돌 옆의 표지판에는 바닷가를 바라보며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돌이 된 고양이의 모습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고양이라기보단 새를 더 닮았는데?' 하고 생각하는데 어머니는 "거북바위 아니야?" 하시고...

 

 고냉이돌의 왼쪽으로 돌아가 몸을 낮추고 사진을 찍어보면 그나마 식빵 굽는 고양이랑 비슷한 모습이 된다. 설명을 읽고 돌아보니 같은 고냉이돌도 어느 각도에서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고냉이돌의 사연을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 표지판에 있던 설명 내용을 아래 추가한다.

가파도는 헌종8(서기1842) 대정읍 상모리 주민들이 출입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초기 가파도 주민들은 어업을 하지 않고 보리, 고구마로만 생계를 유지하여 주민들과 같이 들어온 육식동물인 고냉이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바위는 고냉이들이 폭풍에 떠밀려오는 생선을 기다리다 굶주림에 지쳐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가파도를 거의 반쯤 돌았을 무렵, 이날의 주인공인 노랑 얼룩고양이가 나타났다. 이 녀석 성격이 굉장히 살갑다. 사진을 찍고 있으면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고양이가 가끔 있는데, 녀석도 그렇게 보기드문 행운의 고양이였다. 입을 크게 벌리며 인사를 건네온다.

 

 

 길고양이가 호기심에 눈을 빛낼 때가 가장 사랑스럽다. 현무암 돌담 뒤에 숨어 이쪽 동태를 살피다가 뚜벅뚜벅 걸어오는 녀석. 해녀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가다 "사진 찍어달라고 저러고 있나"하며 웃고 가셨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분을 만나면 가끔 무슨 놈의 고양이를 찍느냐고 혼나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사진 찍는 동안 싫은 소리를 하는 분은 없었다. 예전에 비양도와 가파도에 길고양이가 늘어 문제시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언뜻 본 적이 있었기에, 고양이라면 미운털이 박히지 않았을까 내심 걱정도 했었기 때문이다.

 

아예 내 집이라는 듯 문앞을 지키고 앉은 녀석. 섬 안에서 만난 다른 녀석들은 겁을 먹거나 눈치보며 달아나기 일쑤였는데, 이 녀석은상당히 여유로워 보여서 마음이 좋았다. 여유를 보여주는 만큼 다른 고양이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데 내가 길고양이를 찍는 동안 어머니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뒤에서 사진을 찍고 계셨다. 사실 길고양이를 찍을 때 내가 어떤 모습으로 찍는지 나도 알 수 없는데, 사진으로 보니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도 해서 좋았다. 어머니와 함께 다니면서 나만 어머니 전담 사진사로 활약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어머니도 그때그때 휴대폰카메라로 나를 찍어주고 계셨던 게다.  

 

 누운 자태를 가만히 보니 젖이 불어 부풀어있는 걸로 보아서 아마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되는 모양이다. 근처에 어린 고양이들을 숨겨놓고 키우는 중이구나 싶다. 수다쟁이 아줌마 고양이인지 대문 앞에 누워서도 쉼없이 앵알거린다.

 

 


의연한 자세로 대문을 지키고 있는 고양이를 뒤로하고 다시 항구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떠나기 전에 모델료로 갖고 다니는 사료를 봉지째 부어놓고 떠나려니, 녀석은 맛을 보고는 "아니 이게 웬 별미야?" 하는 듯 응냥거리며 사료를 와작와작 먹는다. 고양이 발 아래 봉긋하게 쌓였던 사료가 순식간에 없어져간다.

 

올레길 10-1 코스 표시. 가파도는 청보리밭일 때가 그렇게 아름답다지만, 아직 베지 않고 남아있는 황금보리밭도 괜찮았다. 내년 5월쯤 가파도를 다시 찾으면 청보리밭 사이를 누비는 길고양이도 만날 수 있을까. 그땐 꼭 길고양이를 만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그때도 어머니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올레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다면.

 

6/26(수) 오후 7시, 홍대 살롱드팩토리에서 만나요^^

->6/23까지 신청 가능(배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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