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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길고양이를 꾸준히 찍을 수 있도록 계기가 되어준 존재가 2002년 7월에 만난 화단 고양이들이었다면,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없던 중학생 시절부터 고양이의 추억을 남겨준 곳은 별궁길 고양이 매점이었습니다.

별궁길 고양이 매점을 거쳐간 여러 마리 길고양이 중에서도 나비는 별궁길 앞을 지나는 많은 분들의 모델이 되어줄 만큼
두루 사랑받은 길고양이였지요.
원래 집고양이였다가 길에서 살게 된 탓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비의 넉살은 경험에서 온 것이겠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믿어도 된다는...



그런데 별궁길 매점을 지키던 나비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지난 토요일에 전해듣고,

그간 나비를 돌봐주신 분이 메일로 보내주신 사진을 받아보았습니다. 매점 아주머니께 나비의 집도 지어서 갖다드리고

틈틈이 사료를 보내주시기도 했던 분인데, 저도 얼굴은 뵙지 못하고 블로그로만 인연을 맺었네요. 

(위 사진은 예전에 찍어둔 잠자는 사진이에요. 나비는 종종 가게 앞 디딤돌에 누워 잠들곤 했답니다.)

 


단짝이었던 깜순이가 갑자기 사라진 뒤로, 나비는 식욕을 잃고 밖으로만 나돌았다고 합니다.

매점에도 들르지 않는 날이 많았고요. 아마 사라진 깜순이를 찾아 헤맨 것이겠죠.

매점 아주머니도, 깜순이를 아는 많은 사람들도 깜순이의 실종을 걱정했지만

함께 뛰놀며 정을 나누었던 나비보다 더 많이 상심한 이는 없었겠지요.

 


급기야 몸이 쇠약해진 나비를 보다 못한 아주머니가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강제급여를 해주기도 하고,

매점 앞을 자주 지나시던 아저씨 한 분이 나비를 데려다가 병원에서 링거를 놓아주고

밥도 억지로 먹어보게 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제 나비는 한 다발의 국화꽃으로 남았습니다. 이제는 고양이집에 들러도 나비를 볼 수 없다는 게 먹먹하기만 하네요.

마지막 날, 나비를 돌봐주신 아저씨 품으로 다가와 팔베개를 하고 숨을 거뒀다는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는데요.

 


많은 이들을 걱정시킨 깜순이는 사실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가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길고양이를 돌보던 캣맘분이 붙임성 좋은 깜순이를 데려가 까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기른다 하네요.

깜순이마저 잘못되었다면 매점 아주머니의 상심이 더 컸을 텐데 그나마 다행입니다.

 

* 나비의 추모 꽃다발 사진과 깜순이의 입양생활 모습은 나비와 깜순이를 지켜봐온 강지우 님께서 보내주셨어요. 

 

  그리고 나비의 임종을 지킨 아저씨가 직접 쓰셨다는 아래 송시까지 메일로 전달해주셨네요.

 

"Ode to Navi"
(The friendly alley cat in Bukchon)


Faith, take me to the Heaven's gate
From this broken heart fate
And don't make me sad n cry no more


Angels, don't fail to take me to other side
And make me roam wild free and laugh


Street life was tough but bad people
took everything and my love


Feel so so alone and sad
7 days nothing but force fed
Not enough to patch my will to die


Today was my last breath, 'cause
I'm tired of city streets and broken heart.


Angels, don't fail to take me over the Gate
And make me roam wild free
Till again with my mate.

 

송시를 쓰신 분이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아 영어로 적어주셨다고 해서,
원어의 느낌을 다 살릴 수는 없겠지만 우리말로 옮겨본 시를 아래 올려봅니다.
송시 번역은 번역가로 일하는 친구가 수고해주었네요.

배경사진은
나비와 깜순이가 함께 뛰놀던 모습을 골라서 편집해보았는데,

나비를 알고 계신 분들이 함께 읽으며 나비의 짧은 삶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번째 책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3부를 시작하는 글로 고양이집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담을 만큼

매점 고양이들은 저에게도 각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나비의 모습이 담긴 책을 아주머니께 전해드렸는데,

이제는 더이상 나비를 볼 수 없지만 책으로나마 추억하실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리고 나비가 그렇게 걱정했던 깜순이가 따뜻한 가정에 입양되어 동생 고양이와 함께 잘 지낸다니

나비도 편히 눈감을 수 있겠네요.

나비와 깜순이를 응원해주셨던 분들을 위해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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