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기사 | 칼럼/한겨레 ESC칼럼

365일 윙크해 주지요-인형작가 정양희와 페키니즈 윙크

by 야옹서가 2007. 6. 18.

구체관절인형 만들기에 한참 빠져 지낸 2004년 무렵, 목요일 저녁마다 인형작가 정양희씨의 인형 교실에 다녔다. 1층에서 열심히 인형을 만드는 동안, 2층에서는 누군가 문 두드리는 ‘탕탕탕’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처음에는 저 문 너머에 사람이 갇혀 있나 싶었다. 온몸으로 문에 부딪치는 것 같은 그 소리. 하지만 정작 문을 열었을 때 뛰쳐나온 건 조그맣고 하얀 개였다. 다들 인형 만들기에 바빠 놀아 주지 않으니, 심통이 난 녀석이 앞발로 문을 계속해서 두들겼던 것이다.

여자 같은 예쁘장한 이름을 가졌지만, 실은 꽤나 까칠한 성격의 페키니즈 수컷 윙크는 올해로 만 네 살이다. 나이를 먹었으면 진중해질 법도 하건만, 부산스럽기는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구 적출 수술을 하는 바람에, 윙크는 한쪽 눈이 없다. 하지만 함께 살며 정이 들면 늘 감겨 있는 눈도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모양이다. 처음 한쪽 눈이 없는 강아지를 떠맡듯이 데려왔을 때 “얘는 365일 윙크하고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어 지어 준 이름이 윙크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는 마당에 풀어놓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정양희씨는, 아기처럼 보살펴 줘야 하는 강아지를 키우면서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개 키우는 게 이 정도로 힘들면, 애 키우는 건 얼마나 힘들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고.

“그전에는 개가 사람들 방에서 살면서 사람 대접을 받는 게 불편했어요. 그렇게 개를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유난 떤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던 제가 윙크에게 ‘엄마 여기 있어’ 하고 말하게 될 줄 몰랐어요. 옛날에 흉봤던 행동을 어느 순간 내가 똑같이 하고 있더라니까요.”

윙크는 눈뿐만 아니라 다리도 조금 휘고 발도 부실해 늘 신경 써 돌봐야 했다. 처음에는 ‘내가 얘를 책임져야 되는구나’ 싶어 은근히 부담도 됐단다. 하지만 윙크와 4년을 사는 동안, 그 생각은 어느새 사라졌다. ‘내가 윙크를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윙크가 날 위해 있어 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 윙크가 반색하며 뛰쳐나오면, 그때 비로소 ‘여기가 빈집이 아니구나’ 하는 따뜻한 느낌이 든단다. 정양희씨는 그렇게 윙크와 함께한 소중한 추억을 담은 천 인형과 비스크 인형을 만든다. 한쪽 눈을 찡긋 감고,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낸 윙크 인형은 5월13일 서울 인사동 성보갤러리에서 열리는 인형 교실전에서도 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길고양이 블로거 www.catstory.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