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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한겨레 ESC칼럼

고양이 발톱 콜라주

by 야옹서가 2007.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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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도 허물을 벗는다. 고양이와 한 집에서 살기 전에는 미처 짐작도 못했던 일이다. 허물이라고 해서 뱀처럼 통째로 가죽을 갈아 치우는 거창한 수준은 아니고, 발톱 끝의 각질층이 통째로 훌렁 벗겨지는 정도지만, 그래도 빠지기 전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발톱을 보노라면 신기하다.

처음 고양이 발톱 껍데기를 발견했을 때는 “어떡해, 발톱 빠졌어!” 하고 호들갑을 떨다가, 고양이들은 주기적으로 발톱이 벗겨진다는 사실을 안 뒤에 멋쩍어서 무심코 버렸었다. 하지만 요즘은 거실 청소를 하다가 바닥에 나뒹구는 고양이 발톱을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이 들어 잘 챙겨둔다. 한번 모아서 뭔가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초승달을 닮은 고양이 발톱을 모아 콜라주를 해보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상상도 해 본다. 인간의 피를 얼려 만든 조각, 얇게 썬 고기를 이어 만든 드레스도 있는 판에, 고양이 발톱을 모아 만든 그림이 하나쯤 있다고 이상할 건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작품이 있다면, 고양이와 함께 한 시간을 담은 셈이니 더욱 소중할 것이다.

누군가는 “지저분하게 고양이 발톱 따위나 모으다니, 무슨 짓이냐”하고 타박할지 모르지만, 고양이 발톱은 인간의 그것처럼 구질구질하고 투박한 모양을 한 발톱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늘 발톱갈이 기둥에 앞 발톱을 갈아대니 때가 낄 새가 없다. 게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음으로 빚은 초승달처럼 투명하고 새치름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속이 텅 비었으면서도 끝이 날카로운 원형을 고스란히 유지한 모습은 마치 동물의 뿔 같다.

고양이의 덩치가 작아서 다행이지, 만약 큰 몸집이었다면 고양이 발톱을 모아 공예품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꽤나 덤벼들었음직하다. 누르면 부서질 정도로 연약하지만, 예술 작품이 꼭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그것도 결격 사유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막상 고양이 발톱을 모아 볼까 결심하니 여간해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 고양이 한 마리가 지닌 발톱이 수십 개이니, 각질도 분명 여러 개가 발견되어야 정상인데, 가뭄에 콩 나듯 한 두개씩 떨어져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혹시 우리집 고양이 스밀라가 발톱 손질을 하다가 각질이 떨어진 게 눈에 띄면 날름 먹어 버리는 건 아닐까? 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고양이의 습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래저래 걱정이니 눈에 띄는 족족 챙겨 두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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