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비수기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는 걸 깨닫고 새삼 놀랐다. 나는 언제나  떠나는 사람보다 머무르는 사람 쪽에 가까웠으니까. 사람들이 여행에서 기대하는 맛집 탐방이나 쇼핑도 관심이 없었고, 관광명소 앞에서 V자를 그리며 ‘나 여기 다녀왔소’ 하고 증명사진 찍는 건 더더욱 질색이었다.


게다가 모처럼 마음먹고 여행을 준비하려 해도, 낯선 곳에서 헤매지 않으려면 신경 써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가이드북을 사고, 약도를 인쇄하고, 인터넷 자료를 갈무리하고, 경험담을 읽다 지쳐서 여행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쉬고 싶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휴가가 주어져도 ‘세상에는 여행보다 휴식이 필요한 사람도 있는 법이지’ 하고 되뇌면서 집에서 고양이와 함께 뒹굴뒹굴 놀곤 했다.


한데 날이 풀리고 봄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갑자기 여행 병이 도지는 건 무슨 조화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싫었던 건 여행 자체가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의 여행이 아니었을까? 최단 시간에 여러 지역을 도장 찍듯 황급히 둘러보는 여행, 남들이 '여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봐야 한다'며 짜 준 코스를 그대로 답습하는 여행 말이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낮잠 자는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을 채워줄 ‘맞춤 여행 코스’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행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밥벌이 하는 틈틈이 그걸 다 준비하려다 보니 짐 싸기도 전에 지쳐 나가떨어질 수밖에.


그렇게 만만찮은 여행 준비에 치를 떨면서도, 일년 중에 며칠은 동물을 찾아 떠나는 ‘이상한 여행자’로 지내고 싶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뛰노는 야생동물도 매력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도시에서 사람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동물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한지 만나보고 싶다. 낯선 여행지에서 다음 장소까지 이동할 최단 루트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허둥지둥 걷는 대신, 동네 주민 산보하듯 느린 걸음으로 고양이가 있을 골목을 훑어나가면서.


물론 녀석들이 언제나 날 기다려주진 않을 테니,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한다 한들 여행지에서 언제나 그리워하던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불확실한 요소로 가득 찬 여행일수록 녀석들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더 커진다. 그게 바로 나만의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에게, 여행이 주는 선물 아닐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고

'취재기사/칼럼 > 한겨레 ESC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려견과 함께 떠나는 해외이주  (0) 2008.06.11
고양이의 파안대소  (7) 2008.05.22
도시 동물 여행  (4) 2008.04.24
스밀라의 기록법  (4) 2008.03.30
동물학대의 소극적 공범자  (2) 2008.03.12
타인의 취향  (1) 2008.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