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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고양이 스밀라

그림책 방석과 스밀라

by 야옹서가 2008. 5. 17.
서울국제도서전 부스 지원 나가서 종일 서 있었더니 삭신이 쑤신다. 점심 먹고 들어오다 짬을 내서 고양이 그림책을 몇 권 샀다. 비룡소에서 나온 이케다 아키코의 '다얀 시리즈'8권은 권당 2000원이다. 정가가 6500원이니 새책인데도 헌책 가격과 엇비슷하다. 웅진주니어 부스에서는 고양이와 고릴라의 우정을 그린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는 친구>를 50% 할인가에 득템.

서울국제도서전은 이미 '서울도서할인전'이 된 지 오래다. 출간된 지 18개월 미만 책은 10%만 할인해야 하지만, 굳이 힘들게 도서전까지 왔는데 인터넷서점보다 비싸게 사려는 사람은 없으니 출판사에서도 고육지책으로 할인율을 높이는 분위기다. 어차피 도서전은 큰 수익을 올리려는 목적보다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홍보한다 생각하고 나가는 거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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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정도 크기의 작은 책이다. 연작 그림책이니까 책등의 그림은 포즈나 표정이 달랐으면 좋겠는데 아쉽다. 다얀 시리즈가 안 팔리는 건, 엄마들이 애들에게 선뜻 권할 내용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인공인 다얀도 상당히 음침하게 생겼다. 눈매가 치켜올라가서 그런가? 내 눈에는 귀여운데, 아마 엄마들 눈에는 기괴하게 보일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팀 버튼의 굴 소년도 귀엽다고 생각하는 인간이기 때문에-_-

다얀 시리즈는 아무리 봐도 어른에게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인데, 어른들은 그림책을 사지 않으니까 또 안 팔리고... 한국 그림책 시장에서는 '똑똑하게, 착한 아이 되게' 도와주는 그림책 아니면 '상 받은 그림책'이나 되어야 좀 팔리지, 아니면 창고에서 자리만 차지하다 이렇게 떨이로 처분되는 운명이다. 하지만 그림책에서까지 교훈적인 내용을 담으라고 자꾸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세상엔 교육적인 책이 넘쳐나는데 그림책까지 그 대열에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 
비룡소 영업사원도 아닌 주제에 '저렴할 때 한 세트 들여놓으시라' 하고 권하고 싶지만, 시리즈를 다 사기 부담스러우면 <다얀의 맛있는 꿈>을 추천한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순서로는 6권이지만, 실제로는 이게 작가의 데뷔작이고, 꿈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괴물의 모습이 어쩐지 처연해서 마음에 오래 남는다. 누군가 잠들었을 때 꾸는 꿈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괴물은 무섭고 종잡을 수 없고 위협적이지만, 속마음은 여리고 쓸쓸한 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가오나시와 많이 닮았다. 다얀 시리즈는 개인적인 취향이 많이 반영된 책이라 선뜻 권하기 어려운데, <우리는 친구>는 부담 없이 추천할 수 있다. 앤서니 브라운이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고릴라 시리즈를 너무 우려먹는다는 이야기도 들려오지만, 특유의 따뜻한 유머는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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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위기의 책들인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펼쳐놓고 표지를 쭉 찍으려는데, 갑자기 스밀라가 어슬렁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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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 하면서 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 죽치고 앉는다. 그림책 8권이 졸지에 방석 됐다. 하루 종일 집 비웠다가 들어왔으면 자기랑 먼저 놀아줘야 하는데, 딴짓만 하니까 못마땅해서 시위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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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그림책의 크기 비교샷을 찍으려고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을 세웠는데, 그때까지도 나오지 않는다. 이딴 짓은 그만 하고, 빨랑 놀자는 애절한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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