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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

by 야옹서가 2008. 6. 29.
사고는 방심한 순간 일어난다. 그제도 그랬다. 저녁으로 돼지갈비와 조개구이를 먹고, 회사 사람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이동하려던 참이었다. 승합차는 9인승인데 타야 할 사람은 그보다 좀 많았다. 기껏해야 10여 분 이동할 예정이었기에 차 1대를 더 부르기도 뭣해서, 불편해도 대충 끼어 앉아 가기로 했다. 앞좌석에 2명이 먼저 올라탔고, 남은 사람들은 뒷좌석에 차례대로 들어가면서 몸을 구겨 넣었다. 나는 행렬의 거의 끝쯤에 서 있다가, 승합차에  한 손을 얹고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티코에 몇 명까지 탈 수 있을까’를 실험하던 모 프로그램이 생각나서 조금 웃었다.

그때 차 앞문이 탁 닫혔다. 오른쪽 넷째 손가락에 둔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픈 것보다 놀라서 가슴이 내려앉았다. 다른 데라면 몰라도, 손가락은 다치면 안 되는데. 비명을 지름직도 한데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침착하게 나왔다. 팀장님, 저, 문에 손이 끼었어요. 앞좌석에 탄 팀장님이 날 돌아보고 상황을 파악해 문을 열 때까지, 내 손은 3초쯤 끼어있었던 것 같다. 문에 손이 끼었을 때의 3초란, 참 길기도 하지. 빼낸 손을 불빛에 비춰보니 끼었던 자리가 푹 패었다. 손가락을 쥐었다폈다 해봤다. 뻐근했지만 움직였다. 피부가 벗겨지고 피는 났지만, 부러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손가락이 무사한(?) 걸 확인한 사람들이, 이거 산재처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걱정 반 농담 반 위로를 건넸다.

계속 아프면 엑스레이라도 찍어봐야 하나 싶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찍힌 자리가 좀 붓고 뻐근할 뿐 큰 이상은 없는 듯하다. 내 성격 중에서 장점이 있다면, 잘 참는다는 점이다. 여섯 살 때인가 수술실에 들어갈 때도 넌 울지 않았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아프거나 무서운 건 잘 참았던 것 같다. 참지 않는다고 해서 아픔이 사라질 리 없고, 무서운 게 없어질 리도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울기야 울었겠지만, 울어봤자 소용없는 일 앞에서 괜히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데 요즘은 가만히 있다가도 감정이 흔들리면 눈물이 난다. 아픈 건 참아도 슬픈 건 참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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