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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일본

어린쥐 사냥하는 일본의 길냥이

by 야옹서가 2008. 8. 30.

여행지에서는,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따라 하루가 달라진다. 아침 골목길에서 어린쥐를 사냥하던 길고양이를 만난 그날은 내게 '운수 좋은 날'이었다. 한번도 직접 볼 수 없었던 쥐사냥 장면을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길고양이에게는 어쩌면 운수 나쁜 날이었을지도.

나는 여행지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기보다 타박타박 걷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차로 이동하면 이동시간은 단축될 것이다. 일찌감치 문을 닫는 일본 관광지에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이 지점에서 저 지점까지 이동하기까지 버려지는 시간을 줄이고,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습기, 열기, 모기'의 3종 세트와 싸워야 하는 한여름의 일본여행이라면, 그냥 속 편하게 '키티 하토버스'나 잡아타고 버스관광이나 할까 하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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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동의 효율성만 따진다면, 정작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볼 수 없다. 남들이 '버려지는 시간'으로 간주하는 이동시간 중에, 길고양이를 만날 확률이 높다. 골목 어디에선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거나, 먹을 것을 사냥하는 고양이들을 만나고 싶다면, 전철이나 버스 같은 이동수단보다, 우직하게 걷는 내 발걸음에 의지해야 한다. 덕분에 여행 중에는 어떤 신체 기관보다 두 발이 고생한다.  

어린쥐를 사냥하는 길고양이를 만났던 곳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골목이었다. 골목이라기엔 좀 크지만, 대로변에서도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에 있었으니 그냥 골목이라고 해 둔다. 길고양이 레이더를 바짝 세우고 눈을 두리번거렸을 때, 멀리서 젖소무늬 고양이가 나타났다. 아직 출근 시간이 되지 않아 골목에는 나와 고양이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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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한 고양이는 입에 물고 있던 어린쥐를 떨어뜨리고, 나를 힐끔 본다.  아무도 없던 아침 골목길에 갑자기 인간이 나타나니 놀라서 당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쥐에 내가 정신을 파는 동안 잽싸게 달아나려고 했던 건지도. 그냥 쥐를 물고 도망갔으면 됐을 텐데, 나는 쥐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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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뜨린 저놈을 다시 주워갈까, 말까 고민하는 눈치다.  결국 고양이는 '전략적 후퇴'를 결정했는지 바로 옆 골목으로 휙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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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달려들어간 곳으로 따라가본다. 모처럼의 아침밥을 코앞에 떨어뜨리고 왔으니, 분명 멀리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좁은 골목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새였다. 불과 30cm도 되지 않을 만큼 좁은 간격으로, 두 건물이 나란히 서 있다. 땅값 비싼 도쿄니까 다닥다닥 건물을 세운 건 알겠지만, 고양이 한 마리가 겨우 드나들만한 간격으로 건물을 세울 수 있다니 놀라웠다. 보고만 있어도 폐소공포증이 도질 것만 같은 협소한 공간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벽에 타일도 붙이지 않고 페인트도 칠하지 않은 시멘트 벽돌 뿐이다. 창문 따윈 당연히 없다. 하지만 고양이에겐 숨기에 유리한 아지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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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고양이가 골목으로 달아나면 나도 잰걸음으로 따라가지만, 이건 도저히 따라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금세 나와 고양이의 입장이 역전된다. 고양이는 허공을 응시하며 여유를 부리고, 나는 쩔쩔 매며 건물과 건물 사이에 머리를 디밀고 고양이를 바라볼 뿐이다. 아마 지나가는 사람들이 봤으면, 건물 사이에 머리가 끼어 빼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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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부리던 고양이는 그 대치 상황이 슬슬 지겨워졌는지, 건물과 건물 사이의 끝으로 종종걸음쳐 달아났다. 잠시 망설이더니, 줌 렌즈로 한껏 당겨도 더 이상 닿지 않는 곳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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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와, 애꿎은 어린쥐만 남았다. 방금 전까지 고양이의 입에 물려있던 어린쥐는 간헐적으로 네 다리를 파르르 떤다. 아직 눈도 못뜬 어린 녀석이다. 고양이 입에 물렸던 자리가 침으로 젖어있을 뿐, 피를 흘리지도 않은 걸로 봐선 큰 상처는 없는 듯한데, 많이 놀란 모양이다. 입을 살짝 벌린 채 쓰러진 어린쥐를 보니, 징그럽기보다는 애처롭다. 하지만 고양이도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작은 동물은 큰 동물에게 먹히고, 큰 동물은 더 큰 동물의 눈치를 보며 달아나는 게 동물의 세계니까. 당장 오늘 아침 이 골목에서 벌어지는 풍경만 해도 그렇다.
더이상 그 근처에게 얼쩡거린다면 아침 굶은 고양이에게 민폐를 끼칠 것 같아 자리를 떴다. 고양이는 내가 가고 나서 어린쥐를 다시 데려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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