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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일본

한가로운 고양이섬 에노시마 산책길

by 야옹서가 2008. 9. 4.
보통 가마쿠라와 묶어 구경하는 도쿄 근교의 여름 휴양지, 에노시마는 고양이가 많기로도 유명한 섬입니다. 심지어 고양이를 위한 모금함까지 볼 수 있죠. 이곳에서 가이드북에도 없는 '고양이 바위'를 발견했어요. 스님들이 수도했다던 해식동굴 '이와야 동굴'과 사랑이 이뤄지는 전설의 장소로 유명한 '용연의 종' 등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은근히 비탈진 길이 많아서, 관광객을 겨냥한 에스컬레이터 탑승권도 판매할 정도입니다. 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고양이 사진을 찍으면서 쉬엄쉬엄 올라가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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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시마는 섬이지만 육지와 큰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배를 타지 않고도 진입할 수 있습니다. 다리 아래로 파란 바닷물이 찰랑찰랑하면 예뻤겠지만... 오른쪽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식빵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아마 저쪽에 있으면 자기 모습이 안 보일 거라고 생각했겠죠?
에노시마를 다녀온 여행자들 사이에서 고양이섬으로 불릴 만큼 고양이가 많다보니, 곳곳에서 길고양이가 뒹굴뒹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날 하루에 만난 고양이만도 열 마리는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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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오토바이 앞좌석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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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연상시키는 조그만 가게 앞에도...가는 길마다 고양이가 터줏대감인양 지키고 앉아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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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근처에 상주하는 듯한 고양이들이에요. 빨간 밥그릇에 얼굴을 박고 열심히 먹던 얼룩냥이를 보더니, 턱시도 냥이가 큰소리로 막 고함을 질러요. 아마 저 밥그릇은 턱시도 고양이의 것이었나 봐요. 얼룩냥이는 기가 죽어서 귀를 납작하게 뒤로 젖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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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길을 오르다 보면 샛길이 하나 있는데, 이정표를 따라가면 에노시마의 명물인 '용연의 종'이 보여요. 이곳에 와서 자물쇠를 잠그고 종을 울리면 사랑이 자물쇠처럼 언제까지나 깨어지지 않고 이어진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물쇠를 매달아두었어요. 나중에 서울로 돌아와서 보니 남산서울타워 밑에도 이곳과 비슷하게 자물쇠 묶는 곳이 생겼더군요.

'용연의 종'에는 전해져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는데요, 이 근방에 살던 머리가 다섯개짜리인 용이 나쁜 짓만 일삼다가, 어느날 하늘에서 내려온 천녀를 보고 반해서 사랑을 고백했대요. 하지만 천녀는 "너처럼 못된 용하고는 사귈 수 없어!"하고 퇴짜를 놓았더래요. 결국 사랑에 눈먼 용이 개과천선, 착한 용이 되었고 천녀와도 사랑을 이루었다는 '믿거나말거나' 전설이지요.

저기 이름을 남긴 연인들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런 장소에 가면, 항상 떠오르는 생각인데요. 연인이랑 깨지고 나서 저 장소를 생각하면 좀 민망할 것 같기도 하고요. 모든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부질없는 장난 같지만, 적어도 힘들게 이곳까지 찾아와서 자물쇠를 잠궈두고 갈 정성이라면, 분명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의 마음도 진실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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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린 자물쇠와 열쇠고리 장신구를 보고 있자니 흥미롭긴 했지만, 커플의 성지에서 혼자 어슬렁거리니 좀 머쓱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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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의 종을 떠나 이와야 동굴이 있는 곳으로 가던 중에, 재미있는 걸 발견했어요. 꼭 고양이 옆얼굴 같지 않나요? 저는 '고양이얼굴 바위'라고 이름을 붙여봤어요.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는 장소지만, 에노시마를 떠올릴 때마다 이 바위가 생각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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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얼굴 부분만 다가가서 본 모습이에요. 아래 고양이 사진이랑 한번 비교해 보세요.
바위에서 움푹 들어간 곳은 눈 자리이고, 뾰족한 귀까지 달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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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시마는 도쿄에서 '에노시마 가마쿠라 프리패스'(한화로 14000원 정도)를 구입하면 인근 관광지와 더불어 저렴한 교통비로 하루종일 다닐 수 있어요. 하루종일 에노덴을 자유롭게 타고 내리며 관광할 수 있거든요. 1980년대 변두리 동네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라 "뭐 이렇게 썰렁해?"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사람에 치이지 않고, 길고양이를 만나 양껏 사진을 찍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괜찮을 것 같네요. 화려하고 멋진 시설은 없지만, 소박하고 조용한 바닷가 관광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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