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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일본

고양이를 사랑한 조각가, 아사쿠라 후미오

by 야옹서가 2008. 9. 21.
고양이를 사랑해 10여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았고, 고양이만을 위한 전시를 꿈꾸며 도쿄올림픽 개막에 맞춰 100개의 고양이상을 빚으려 했던 남자, 하지만 죽음이 꿈보다 먼저 찾아와버린 바람에, 세상을 떠난 아사쿠라 후미오(朝倉文夫, 1883-1964).세상은 그를 '일본의 로댕'이라 불렀지만, 나는 '고양이를 사랑한 조각가'로 기억한다.

도쿄예술대학 조소과 재학 시절, 가난한 탓에 모델조차 고용할 수 없었던 아사쿠라 후미오는 학교 근처의 우에노 동물원을 찾아가서는, 인간 모델 대신 동물들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는 동물들의 역동적인 몸짓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새겼다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손끝으로 재현해냈을 것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멀리서만 지켜볼 뿐 만질 수 없었던 모델이었다면, 그가 키웠던 고양이는 바라볼 뿐 아니라 언제나 자유롭게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모델이었다.

인간 곁에 가까이 머물면서도 내면에 야생성을 간직한 고양이야말로, 아사쿠라 후미오에겐 가장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었을까. 조각이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투덜대는 부유한 의뢰인들이 지긋지긋할 때,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대상, 고양이를 조물조물 빚으며 행복을 느끼지 않았을까. 
1964년 아사쿠라 후미오가 백혈병으로 숨지자, 그의 이름을 딴 조소학원이자 아틀리에였던 아사쿠라 조소관은 그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전시관이 되었다. 조소관 입구에는 그의 인상주의 조각이 놓여있지만, 내 마음을 끄는 것은 2층의 고양이 조각들이다. 아사쿠라 조소관 문 밖에 서서 2층을 올려다보면, 창문 너머로 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도사린 채 앉아 있다.

녀석은 그저 거기 놓여있을 뿐인데, 네모난 유리창 너머로 창 아래를 굽어보는 듯한 고양이의 눈길이, 내게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조각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유리창에 비친 여름 나무가 겨울 나무로, 다시 봄 나무로, 몇 차례나 모습을 바꾸어도 왜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오지 않는지 의아해하며, 망부석처럼 몸이 굳어버린 듯 보이는 거다.

고양이가 내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줬을 텐데. 아사쿠라 후미오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잠들었다고, 그가 그렇게 좋아했던 고양이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니, 무덤 속에서도 외롭지는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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