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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800년

by 야옹서가 2001. 6. 12.

June 12. 2001 | 서양인의 눈에 한국이란 나라는 어떤 이미지로 새겨졌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만한 책이 나왔다. 비교문학자인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교수(42)는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이향·김정연 공역, 청년사)에서 프랑스라는 타자의 시각으로 본 한국 800년사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했다.

불레스텍스 교수는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이미지학이라는 비교문학적 방법론을 적용해 한국의 이미지를 정립했다. 그는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 덕분에 일찍이 동양에 대한 기본 자료가 많이 축적돼있어 프랑스의 시각에서 본 한국이라는 주제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프랑스 철학자와 시인들이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남긴 자료들이 한국에 향한 식민주의적 인식을 보완할 수 있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텍스트와 사진자료를 수록해 자료집의 성격도
불레스텍스 교수는 한국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 우선 한국의 '이미지'를 모았다. 이 자료들이 고스란히 한국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1차적 연구자료로는 충분하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역사서라기 보다는 자료집의 성격을 많이 띄고 있다. 이 책에는 13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로 남겨졌던 편지·일기·기행문·수필 등의 문학적 자료와 기사·사진·지도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돼온 과정이 담겨 있다. 이런 다양한 텍스트와 시각자료는 당시 프랑스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되살리는 데 꽤나 요긴하다. 이 책은 본래 불레스텍스 교수의 소르본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을 고친 것이지만, 학술적인 부분을 제외시켜 336쪽에 이르는 분량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불레스텍스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이미지가 프랑스에 전파되는 과정은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254년 한국을 최초로 언급한 기욤 드 루브룩, 1668년 《제주도 난파기》와 《조선왕국기》를 쓴 하멜 등에 의해 한국은 '착한 미개인'과 '동양의 현자'라는 상반된 개념 사이에 자리잡게 되는데 이를 첫 번째 단계로 본다. 그러다가 18세기 유럽 국가에 중국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됐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볼테르의 글에 언급된 '어둡고 깊은 나라'라는 이미지와 라페루즈의 항해기에 묘사된 회화적 풍경이 이미지에 추가된다.

마지막으로 1880년, 병인양요가 일어나면서 한국의 구체적인 현실이 프랑스인의 눈에 들어오면서 세 번째 단계가 시작한다. 이 시기에 생성된 '은둔의 나라'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미지는 20세기까지 이어져 분단된 한국의 현실을 설명할 때도 흔히 적용되고 있다.

지난 800년 간 한국을 바라본 프랑스인의 시각에서 낭만적인 오리엔탈리즘의 흔적을 지우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를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눈을 통해 우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또다른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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