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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인간과 자연의 상생(相生)을 꿈꾸는 생태도서들

by 야옹서가 2001. 8. 6.

Aug. 06. 2001 | 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자연을 가까이할 기회가 많아지는 여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과학도서들이 잇달아 출간됐다. 현역 생물학자인 최재천씨의 《알이 닭을 낳는다》(도요새)와 권오길씨의 《생물의 애옥살이》(지성사), 원로 조류학자 원병오씨의 《날아라 새들아》(다른세상) 등 일련의 생태도서들은 자연계 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물의 다채로운 모습을 평이한 서술방식으로 풀어냈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의 《알이 닭을 낳는다》는‘생태학자의 세상보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자연의 모습에서 인간 세태의 면면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어낸다. 수컷들이 암컷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번식지에서 교태를 부리는 ‘렉 번식’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비교하면서 성 상품화를 개탄하고, 당적 옮기기를 밥먹듯이 하는 정치인들은 철새가 아닌 ‘텃새 정치인’으로 불러야 한다며 꼬집기도 한다. 철새는 목숨을 걸고 긴 여정에 오르는 것일 뿐이지만, 텃새는 한번 얻은 영역은 내놓지 않으며 먹이가 나타나면 구름같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동물세계에도 ‘몸 로비’가 있고, 영장류 사회에서도 인간세계처럼 ‘줄’이 우선이라는 대목도 흥미롭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생태학 이론을 이해하기 쉬운 실제 사례와 함께 설명한 점은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플랫폼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이수현씨의 희생이 주목받은 이유로 유전적으로 무관한 개체간에 벌어지는 이타주의인 ‘상호호혜이론’을 설명하고, 인간과 병원균과의 전쟁을 설명하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쉼 없이 달려야하는 ‘붉은 여왕’을 인용한다. 같은 면적의 보호구역이라 해도 도로 건설 등의 이유로 잘게 쪼개지면 넓은 지역을 필요로 하는 큰 동물들은 사라진다는‘가장자리 효과’를 설명하면서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려면 통일 후 비무장지대에 지상도로 대신 터널이나 고가도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독특하다.

넘치는 것보다 좀 모자란 듯한 자연의 섭리 따라야
《알이 닭을 낳는다》가 신문 사설을 읽는 듯 정제된 느낌이라면, 강원대학교 생물학과 권오길 교수의 《생물의 애옥살이》(지성사)는 친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구수한 입담이 돋보인다. 마리아 칼라스가 뱃속에 촌충을 키워 6개월만에 몸무게 50kg을 뺐다는 일화나, 작은 털구멍 하나에 열 마리가 기생한다는 모낭진드기, 거웃 뿌리에 기생한다는 세면발이 등 미세 기생충 이야기는 글을 읽다가도 슬쩍 몸을 긁어보게 만들만큼 생생하다. 조개 속에 숨어사는 속살이게, 나무에 기생해 사는 겨우살이 등 기생동식물 이야기뿐만 아니라 멸종위기에 놓인 동식물들의 수난사를 예로 들면서 최음제 효과가 있다는 소문 때문에 씨가 마를 지경인 해룡의 입을 빌어 “야, 이놈의 인간들아. 비아그라가 있지 않느냐. 그것이나 처먹어라, 나 대신.”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해학적이다. ‘애옥살이’라는 단어가 살림이 아주 구차하다는 뜻이니 '생물의 애옥살이'는 고생스럽게 살아가는 생물의 삶을 의미하지만, 이처럼 검소한 자연의 섭리를 본받자는 것이 글 속에 담긴 저자의 주장이다.

동물의 생활상을 다룬 책으로 다른세상 출판사의 생태도서 시리즈인 《날아라 새들아》도 빼놓을 수 없다. 원로 조류학자인 원병오씨가 펴낸 이 책은 ‘이야기 조류도감’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텃새와 철새, 나그네새와 함께 천연기념물이 된 새 40종, 멸종위기에 처한 새 59종을 따로 분류해 총 2백35종의 생태를 사진과 함께 담았고, 책 말미에는 남한의 조류 관찰지 49곳과 북한 11곳을 지도와 함께 소개했다. 책을 읽다보면, 새가 털갈이를 하는 이유라든가 계절에 따라 새들이 이동하는 이유, 텃새와 여름새 구분법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예를 들어 텃새는 깃털 색깔이 어둡기 때문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깃털로 치장한 여름새와 쉽게 구분된다. 먼 거리를 날 수 있도록 날개가 길고 뾰족한 것도 여름새의 특징이다. 각종 새의 특징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파충류에서 진화한 새의 조상 ‘아르케옵테릭스’부터 불법을 지키는 새‘가루라’, 한번에 9만 리를 날아간다는 ‘붕새’, 태평성대의 상징인 ‘봉황’ 등 가상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과 함께 해온 새의 문화인류학적 의미도 접할 수 있다.

자연은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는 대상
이들 저서가 한결같이 주장하는 내용은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들여 거창한 자연보호 운동을 벌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동물들의 이름과 생태를 알아두고 그들을 위해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자연보호가 된다. 인간도 자연계의 한 구성원이고 ‘진화한 영장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지금 '멸종위기 동물'의 사진이 실린 자리에 언젠가 인간이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넘치는 것보다 조금 모자란 듯한 삶,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책들을 읽으면서 여름 한 철을 보내는 것도 좋은 피서법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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