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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나를 잊는 것, 혹은 잊혀지는 것- 《슬픈 시간의 기억》

by 야옹서가 2001. 8. 27.
Aug. 27. 2001 |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젊음을 보낸 뒤 과거의 기억을 윤색하고 되씹으며 사설 양로원에서 살아가는 네 명의 노인을 그린 김원일의 장편소설 《슬픈 시간의 기억》(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화장에 집착하는 한여사, 걸쭉한 육담을 내뱉으며 자신의 욕구에 충실해온 초정댁,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하며 평생 교직에만 몸담은 윤선생, 현실도피적인 성향으로 자기 세계에만 갇혀 살아가는 사무장 김씨의 이야기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안다>, <나는 두려워요>,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등의 제목으로 묶였다.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기억’에 대한 집착
<나는 누구인가>의 한여사는 과거를 덮기 위한 상징적 행위로 화장에 몰두한다. 한여사는 ‘미국 유학간 박사 아들을 둔 귀부인’의 이미지를 원하지만, 그녀의 실체는 정신대와 양공주 생활을 거치며 혼혈아를 낳아 미국으로 입양시킨 초라한 노파일 뿐이다. 한점아가에서 한경자, 게이코, 한안나로 매 순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춰 이름을 바꾸며 살아온 한여사는 과거를 끊임없이 미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치매에 걸린 그녀에게 남은 것은 파편처럼 흩어져 줄거리를 맞출 수 없는 기억뿐이다. 한여사가 그렇게도 두려워하던 치매가 예고 없이 찾아온 때를 그린 묘사는 무서울 만큼 적나라하다.

한편 <나는 나를 안다>의 초정댁이 가장 우선시하는 건 자신의 욕망이다. 그녀에게 욕망의 충족은 죄책감보다 우선한다. 지참금을 노리고 열일곱 나이에 부잣집의 중증 장애인 아들과 결혼한 그녀는 폐병으로 죽어 가는 남편을 두고 명석한 식객 우씨를 유혹해 씨를 받고, 방앗간 이씨와도 놀아난다. 그녀는 자신과 정을 통한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 밀고와 살인까지 서슴지 않았다. 또 죽을 때까지 유산을 누구에게 물려줄지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식들을 조종할 줄 안다. 그러나 ‘변호사’로 불릴 만큼 수다스럽고 당찼던 그녀 역시 갑자기 찾아온 중풍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만다.

전반부의 한여사와 초정댁이 격하게 부대끼는 삶을 살아왔다면 후반부에 등장하는 윤선생과 사무장 김씨는 둘다 정적인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윤선생은 이타적인 삶을, 사무장 김씨는 외부와의 관계를 거부하는 닫힌 삶을 보여준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나는 두려워요>에 등장하는 윤선생은 미국 선교사의 수양딸이 돼 언청이 수술과 고등교육을 받은 뒤 그 은혜를 사회에 돌리기 위해 평생을 교직자로 살아가며 사랑을 실천하지만,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의 김씨는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갈 만큼 지식인이었음에도 사회를 위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그의 일생은 도피와 단절로 이어졌으며, 사르트르의 《구토》에 나오는 로캉탱처럼 책 속에 파묻혀 현실과 유리된 삶이었다.

인간은 시간의 태엽을 몸에 감으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네 명의 노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 자체보다 인간답지 못한 죽음이다. 양로원 가동에 살고 있는 네 명의 노인들에게 나동에 수용된 치매노인들의 모습은 부정하고 싶은 자기상실의 미래였을 것이다. 사무장 김씨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처럼 인간은 육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에 집착한다.

“우리는 열심히 작별의 시간을 향해 달려가. 시간의 태엽을 스스로 몸에 감으면서 말야. 팔레스타인 젊은이가 폭탄을 몸에 안고 자살 테러를 감행하듯이. 노령의 죽음은 누구나 육신의 자살이야, 의식은 더 살고 싶은데 몸이 자살을 감행하는 거야.”

늙어간다는 것은, 죽음이 소리 없이 한발 두발 다가온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죽음은 기억의 소멸이다. 먼저 오는 것은 육신의 소멸이지만, 죽은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때 그는 비로소 완벽한 죽음을 맞는다. 그러니 가장 끔찍한 것은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 잊혀지기 전에 자기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경우다. 육신은 살아있되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슬픈 시간의 기억》이 기억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기억이 늘 아름답진 않으며 때로 괴롭고, 추하고, 부끄러운 것이라고 해도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에 소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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