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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세로축을 찾기 위한 도전의 역사 - 《경도》

by 야옹서가 2001. 9. 11.

Sep. 11. 2001 | 항해술과 해도가 발달하지 않았던 17, 18세기까지만 해도 선원들에게 위도와 경도의 두 선은 생명선이었다. 특히 경도를 모른 채 항해한 당시 선원들은 매일 목숨을 내건 모험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지구는 24시간에 360도 회전하므로 경도 15도는 1시간에 해당한다. 따라서 배가 위치한 곳의 시각과 이미 경도를 알고 있는 다른 한 곳의 시각을 알면 시차를 거리로 환산해 현 위치의 경도를 파악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정확한 해상시계가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의 시계는 배의 흔들림, 온도와 기압 등의 변수에 따라 속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1714년 영국 의회가 경도법을 제정해 현 화폐가치로 수백만 달러에 상당하는 2만 파운드를 상금으로 내걸었고, 갈릴레이에서 뉴턴까지 당시 과학자들은 이 문제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경도 문제를 해결한 것은 무명의 시계공 존 해리슨이었다. 해상에서 정확한 시간을 유지해 경도 측정 문제를 해결한 시계, 즉 오늘날의 크로노미터를 그가 개발한 것이다.

시계박물관 방불케 하는 풍부한 도판과 설명
전직 《뉴욕타임즈》 과학부 기자 데이바 소벨이 쓴 《경도―한 외로운 천재의 이야기》(김진준 옮김, 생각의나무)는 17, 18세기에 큰 과학적 난제로 꼽힌 경도 측정의 역사와 함께, 1735년 첫 번째 해상시계 ‘해리슨 1호(약칭 H-1)’를 제작한 이래 1773년 경도상을 수상하기까지 존 해리슨이 겪은 40년 간의 고난을 교차시켰다.

이 책에는 해리슨의 네 번째 해상시계이자 최고의 걸작 ‘H-4’를 비롯해 해들리 사분의, 십자측고의, 후면측고의, 방위나침반 등 경도 측정에 사용됐던 기존 도구와 당시의 지도, 발명가와 과학자들의 초상화 등 1백78장의 도판이 실려 책 속의 작은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윌리엄 앤드루스가 도판과 함께 덧붙인 설명은 정확한 경도를 측정하기 위한 당시의 노력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목수로 시작한 존 해리슨은 1735년 제작한 첫 번째 해상시계 ‘해리슨 1호(약칭 H-1)’를 완성했다. H-1은 기존의 진자시계와 달리 윤활유가 필요 없고 온도변화에도 끄덕 없는 부품을 사용해 혁신적인 정확도를 보였다. 1759년에 완성시킨 H-4는 앞서 만들어진 H-1, H-2, H-3보다 크기가 작고, 우아함과 정밀함이 돋보였는데 톱니바퀴들 틈에서 정교하게 세공된 다이아몬드와 루비는 일찍이 해리슨의 대형시계에서 마찰 없는 톱니바퀴와 메뚜기 탈진기가 맡았던 역할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그의 시계들이 혁신적인 오차허용범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리슨이 경도상을 수상한 것은 1773년, 거의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초기에는 작은 결점도 용납하지 않으려 했던 해리슨 자신의 완벽주의가 그 이유였지만, 나중에는 월거이용법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천문학자 네빌 매스켈린과의 신경전이 큰 원인이 됐다.

해리슨의 영원한 앙숙, 네빌 매스켈린과 월거이용법
사실 해리슨과 매스켈린의 대립은 개인간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천문학과 기계과학의 대립이다. 해리슨의 시계가 등장하기 전까지 경도를 측정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달의 운행을 측정해 그것을 토대로 경도를 알아내는 월거이용법이었다. 그러나 토비어스 마이어에 의해 도입되고 오일러에 의해 이론적 토대를 쌓은 월거이용법은 측정 방법이 복잡하고 어려웠으며, 오차를 수정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등 학문적인 소양이 있어야 계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쌓은 업적을 한낱 ‘기계공 나부랭이가 만든 째깍거리는 상자’에게 뺏겨야 한다는 건 당시 천문학자들로서는 인정하기 힘든 일이었다. 따라서 네빌 매스켈린을 비롯한 경도상 심사위원들은 월거이용법을 이용하는 천문학자들에게 유리하도록 경도상의 시상 규정을 뜯어고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조지 3세의 지지 속에서 해리슨은 자신의 마지막 해상시계 H-5를 성공적으로 시험에 통과시키며 해상시계에 도전한지 근 40년만인 79세에 비로소 경도상의 정당한 수상자로 인정받았다. 해리슨이 만든 크로노미터의 가격은 월거법을 측정하는 육분의에 비하면 열 배가 넘는 가격이었지만, 해리슨의 성공에 자극받아 그의 뒤를 이은 라컴 캔들, 존 아널드, 토마스 언쇼 등이 대량생산의 길을 열면서 크로노미터는 대중적인 보급의 길을 열었다.

일부 시계학자들은, 영국이 바다를 지배하게 되고 대영제국이 탄생한 배경에는 해리슨의 업적이 많은 공헌을 했다고 주장한다. 크로노미터 덕분에 영국이 바다를 정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도를 측정하는 데 필요한 오차 없는 해상시계를 발명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존 해리슨은 《경도―한 외로운 천재의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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