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고통 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누구든 크고 작은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고통은 단순히 의지박약의 문제일까? 똑같은 재난을 당했을 때 어른들은 실의에 잠겨 있는데, 어떻게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뛰어놀 수 있을까?
고통은 없앨 수 있는 것일까?

<고통에게 따지다>(웅진지식하우스)의 필자 유호종은 고통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유도함으로써, 고통을 해결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철학과 생명 윤리를 전공한 필자는 평소 삶과 죽음, 의료 윤리 등 묵직한 주제를 다뤄 왔는데, 고통 역시 이런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딱딱하게 고통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보다 감정이입할 수 있는 사례, 우리 주변에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의 투병기를 올려 감동을 줬던 말기암 환자 고 김현경 씨, 쉽게 뼈가 부서지는 병을 앓으면서도 소외계층에게 매일 50통씩 편지를 쓰는 오아볼로 씨, 음주운전자 때문에 전신화상을 입었지만, 가해자를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그가 보험을 들어뒀기에 치료받을 수 있음을 감사하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지선 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의미요법’을 창시한 유태인 정신의학자 빅터 프랑클, 종기 때문에 온 몸에 뜸을 뜨면서 받은 고통을 역지사지 삼아, 불고문의 일종인 단근질을 일체 금지한 영조의 사례도 있다. 필자는 고통을 감성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이처럼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고통의 대처법을 객관화한다.

없애야 할 고통, 자기 성숙의 원동력이 되는 고통 ●

인간이 고통에 직면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은 ‘이걸 어떻게 없앨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무조건 고통을 없애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필자는 어차피 겪어야 하는 고통이라면,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성숙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사람들은 무의미한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할 때 심리적으로 더한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삶이 만족스러운 자는 삶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지만, 고통스러운 자는 끊임없이 자신과 자신의 삶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숙고한다. 고통이 성찰을 유도하고 인간적 성숙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한 번 고통스러워 본 사람은, 다음 번에 찾아오는 고통도 잘 견디게 된다. 또한 앞서 언급한 영조처럼, 극한의 고통을 겪어봄으로써 타인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고통의 의미를 확인하고 난 다음 단계로 고통의 제거가 남는다. 필자는 이를 ‘생각 바꾸기’로 명명한다. 그가 제안하는 방식은 다양한데, 관습이나 통념에 휘둘리지 않기, 열등감 버리기, 미래를 걱정하거나 과거를 후회하지 않기, 우주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등이 그것이다. 다소 빤한 결론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