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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의 편지, 9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by 야옹서가 2006. 9. 6.
최근 출간된 '내 사랑의 역사: 엘로이즈&아벨라르'(북폴리오)를 뒤적이다가 눈에 띈, 인상 깊은 한 대목.

위안의 편지 letter of consolation는 자신의 불행한 삶을 편지로 써서 보냄으로써, 편지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고통이 사실 그다지 크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만들려는 의도로 쓰였다. 2만 단어에 이르는 그 편지는 단순히 아벨라르의 삶만을 이야기하는 자서전이 아니었다. 몇 세기 동안 그 편지는 그가 직접 지어 붙인 '내 불행의 역사 Historia Calamitatum Mearum'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왔다.

아벨라르는 '위안의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편지를 읽을 이름 모를 수도사에게 자신의 고통스런 지난날을 털어놓는다. 12세기에는, 사는 게 힘겹다고 느끼는 수도사들에게 이런 편지가 역설적인 희망을 주기도 했나 보다. 이른바 '초기 편지'에 해당하는, 엘로이즈와 아벨라르가 주고받은 8통의 편지 중에 5통이 아벨라르의 것이다. 아벨라르는 이 편지에서, 공공연히 알릴 수 없었던 비밀결혼, 축복받지 못한 아들의 출산, 강제 거세, 연인과의 생이별 등을 적나라하게 털어놓는다. 편지라기보다는, 편지 형식을 빌린 회고록이라고 해야 어울리는 글이다. 파란만장한 아벨라르의 젊은 시절은, 다른 수도사들이 '이 자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행복한 거로군' 하고 위안을 느낄 만큼 충분히 극적이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시대로부터 900년이 지난 요즘은, 인터넷이 이런 '위안의 편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 모르는 누군가가 내비치는 괴로움에 자신의 상태를 견주어 상대적인 위안을 얻는 일이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빤해 보이는 휴먼 드라마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힘들 때 위로받고 싶고, 힘든 사람이 눈앞에 있을 때 울컥하면서 위로하고 싶어지는 게 평범한 사람의 마음이니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 바로 당신.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앞으로도 모르고 지나칠 확률이 더 높겠지만, 어쨌든 그런 위안의 편지를 필요로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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