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포털 엔키노/2000. 10]
느낀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효과적인 자기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사회에서는,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다가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래의 감정'이란 통제하기 어려운 녀석과 손잡고 다니기보다는, 의례적인 웃음을 얼굴에 띄우는 길을 선택합니다.

‘내가 기쁠 때 같이 기뻐해 주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해 줄 사람’을 마음 속으로 찾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런 감정관리에 지친 탓이겠지요. 그러나 현실에서 타인과 그런 관계를 맺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가족이 아니라면, 사랑의 달콤한 환상 속에서 빠져 있는 연인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일까요.

그렇지만 당신의 통제하기 버거운 감정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주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요? 지금 소개하는 김범의 `유틸리티 폴더`가 그렇습니다. 이 전시를 보려면 `유틸리티 폴더`웹사이트에서 폴더 아이콘을 클릭하기만 하면 됩니다. `유틸리티 폴더`전은 대관전시가 아닌 인터넷 전시니까요.

접속환경만 갖춰져 있다면, 장소와 시간의 제약 없이 다수의 사람들이 동일한 조건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한 인터넷 전시는 예전부터 대안적인 전시문화로 제안돼 왔지만, 대관전시가 주류를 이루는 미술계의 특성상 오프라인 전시의 리뷰 성격을 띠거나 개인홈페이지 내의 갤러리 같은 부속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또 원본이 이미지 파일로 전환되면서 원래 질감의 입체적인 감상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김범 작업은 다릅니다. 전시된 작품의 감상과 향유는 프린터에서 출력물을 뽑아 벽에 붙이거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완성되는 아주 간단한 절차를 거칩니다. 모든 작품이 단순한 2D 그래픽과 텍스트로 이뤄졌기 때문에, 원본과 사본의 차이 없이 온전한 전시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단, 관람객이 직접 작품제작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한 폴더 속의 지시내용은 좀 엉뚱해서,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어이없어 할 지도 모릅니다.

유틸리티 폴더를 클릭하고 들어가면 여섯 개의 아이콘이 뜹니다.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첫 번째 항목 ‘유틸리티에 대하여’와 마지막의 ‘Site Memo’는 안내문 성격을 띠고 있고, 본 전시 내용은 ‘비정’, ‘대리인’, ‘탈 것’, ‘CowardJar’입니다. 그중에서 우선 ‘대리인’폴더를 클릭해서 안내문을 읽어보죠. 전 두 명의 대리인 중 LovelyWeeper를 선택했습니다.

아이콘 속 지시사항은 이렇군요.
1. 프린터를 이용하여 LovelyWeeper.img 파일의 이미지를 인쇄합니다.
2. 이미지의 귀 부분에 희게 표시된 점들을 연필, 볼펜, 못 따위로 뚫습니다.
3. 인쇄된 이미지를 어딘가 구석에 붙여두고, 보고 들은 슬픈 일들에 대해
사용자가 직접 울 수 없을 때마다, 그 일들에 대해 들려주어 대신 울고 있도록 합니다.


그림에 구멍을 뚫는 행위는 감상자의 풀리지 않은 슬픔에 숨구멍을 내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롤랑 바르트가 언급한 푼크툼과 맥락을 같이하는 작은 구멍들은 1차적으로는 관람자의 마음을 날카롭게 관통했던 상처의 재현이지만, 이와 같은 주술적인 재현을 거치면서 억압된 감정을 자유롭게 하는 상징적인 배출구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죠. 일종의 내적 치유의 성격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소개해드린 LovelyWeeper 외에도 많은 친구들이 당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시를 보고 나면 “이게 뭐야?”-.-;하고 투덜거릴 분들도 계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거대담론을 주제로 삼는 전시보다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김범씨의 화법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의미는 복합적이어서, 아마 제가 느낀 것과 작가의 의도는 좀 다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것에 반응한다고 하니까요. 유틸리티 폴더를 열었을 때, 여러분에게 가장 유용한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 지금은 온라인전시가 끝나 웹사이트가 닫혔답니다. 아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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