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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쌈지스페이스 제5회 오픈스튜디오-함진 편

by 야옹서가 2004. 3. 21.
홍대앞 쌈지스페이스에서는 매년 유망한 젊은 작가들을 선정해 쌈지스튜디오에
입주시켜 작업을 지원합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면 작가들이 교체되면서
한 해 동안의 작업을 결산하는 스튜디오 공개전시회를 열지요.
이번 오픈스튜디오는 5회 째를 맞이하는 전시입니다. 마침 회사도 가깝고
제가 좋아하는 함진과 정수진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갔지요.
사실 다른 작가들의 작업은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아서...
(음. 한명 더 꼽는다면, 사진작업하는 '사사'의 사진이 눈길을 끌더군요)

함진은, 사루비아다방에서의 첫 전시를 놓쳤지만, 대학로 마로니에갤러리
(예전 전시장 이름은 다른 거였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 기획전에 소개된
조그만 인형군을 보고 마음에 두었던 작가였습니다. 손톱만한 얼굴에 섬세하게
묘사된 표정이라든가 캐릭터 인형들이 벌이는 그로테스크한 놀이 같은 설정이
인상깊었죠.

그 이후 시청역 벽돌담 사이에 한시적으로 설치작업을 했던 인형들을 제외하고는,
그의 작품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달콩이의 이상한 하루>(돌베개어린이)라는,
인형집도 아니고 동화집도 아닌 특이한 책 하나를 만들다가 훌쩍 군대를 가버렸거든요.

그리고 나서 본 첫 전시라, 기대가 컸습니다.
손가락만한 그의 인형들을 볼 수 있길 바랐는데...
그의 방이었던 전시실로 들어서는 순간, 두둥! 써늘한 느낌.
방 앞쪽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 멀리 무언가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들이
꼭, 조류독감 때문에 망해서 텅 비어버린 듯한 양계농장 분위기의 녹슨 케이지가
잔뜩 쌓여있습니다.


무슨 고문실 같은 분위기의 어두운 조명에 천장에서 내려온 알전구가 흔들흔들.
그 앞에는 괴수로 변한 인형들이 서 있습니다. 기존 봉제인형들의 리폼작업인데요.
함진 작업이 귀여운 캐릭터들의 허를 찌르는 '그로테스크함'에 있다고 했을 때
약간 덩치가 커지긴 했지만, 역시 예전 작업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보는 이를 아연실색하게 만들고, 때론 등골이 오싹해지는 블랙유머가 여전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한때 귀여운 테디베어였을 곰돌이는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고
혀를 내두르며 에폭시 침을 줄줄 흘립니다. 야생성이 거세된 애완동물이 아니라, 언제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주인의 얼굴을 날려버릴 수 있는 곰이 된 거죠.



동물 케이지 안에 갇힌 강아지 인형은, 스스로 자기 얼굴의 거죽을 벗기고,
깨진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며 사람이 되려 합니다. 바닥에는 뜯어낸 강아지 얼굴의
거죽이 얌전히 놓여져 있군요. 그밖에도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하는 양 인형,
엄마 코알라의 등짝에 날카로운 발톱을 꽂고
피를 줄줄 흘리는 아기 코알라 인형 등이 관람자를 기다립니다.
동물인형들은 하나같이 'I wanted to be human being~' 이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이 동물들이 인간의 잔인한 속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정말 그 녀석들은 인간이 되고 싶은 걸까요?

이번 전시는 3월 26일(금)까지 열립니다.

더 읽기 : 2000년 9월, 함진의 게릴라전시 관람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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