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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인형 손동작에 깃든 장인 정신-日 전통인형극 ‘분라쿠’

by 야옹서가 2005. 1. 31.
[미디어다음/2005. 1. 31] 국립국악원에서는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를 맞이해 1월 29, 30일 양일간 한국의 판소리와 더불어 일본 전통인형극 분라쿠(文樂)를 소개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분라쿠 공연을 화보로 만나본다.

한국의 판소리와 일본의 분라쿠는 2003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그 예술성을 인정받은 전통연희 분야다. 특히 분라쿠는 인형 하나를 움직이기 위해 3명이 동원될 만큼 정교한 조작을 자랑하며, 인형극임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없는 대신 ‘다유(大夫)’라 불리는 소리꾼의 역할이 중시된다는 점이 독특하다.

분라쿠의 역사는 17세기로 거슬러올라간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던 유랑인형극인, 서사시의 일종인 조루리(淨瑠璃)를 노래했던 다유, 그리고 샤미센(三味線) 연주자가 한 팀이 되어 공연한 것이 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다. 이 닌교조루리를 19세기 경 우에무라 분라쿠켄이 근대적 공연양식으로 재정립하면서, 그의 극단인 분라쿠좌의 이름을 따 오늘에 이른 것이다.

분라쿠의 주제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는데 왕실과 무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대물, 서민들의 희노애락을 담은 이야기, 인형의 아름다운 춤을 감상하는 무용물 등이 그것이다. 이번에 소개된 ‘쓰보사카칸농레이겡키(壺坂觀音靈驗記)’는 두 번째 유형으로, 눈먼 남편 사와이치와 부인 오사토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를 불교의 인과응보 사상에 녹여낸 것이다.


좌우로 길게 펼쳐진 무대 위에 목소리 연기자이자 해설자인 다유와 샤미센 연주자가 앉아 극의 시작을 알린다. 인형 조종사, 다유, 샤미센 연주자가 한마음이 되어 극에 몰입해야만 비로소 분라쿠가 시작된다.


다유는 인형 연기자를 대신해 창(唱)을 한다. 리드미컬하게 대본을 읽는 것인데, 굵직한 남자의 음성, 애절한 여자의 음성, 때론 해설자 역할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어야 하기에 쉽지 않다. 다유의 목소리 연기에 감칠맛이 있어야 인형에도 생명이 깃든다.


분라쿠의 가장 큰 특징은 주 조종사, 왼손 조종사, 발 조종사 등 3명이 동시에 인형을 움직인다는 점이다. 주 조종사는 두건을 쓰지 않고, 인형의 표정 연기와 몸통, 오른손의 세밀한 움직임을 맡는다. 한편 왼손 조종사와 발 조종사는 두건을 쓰고 그림자처럼 움직인다. 무(無)를 의미하는 검은 옷을 입는 순간, 인형 조종사들은 무대 위에서 상징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본 공연에서는 분라쿠좌에 입문한 지 60년째인 일본의 인간 국보 요시다 분자쿠 선생이 여주인공 오사토의 조종을 맡았다.


새벽 4시만 되면 집을 나가는 아내를 의심한 남편 사와이치가 샤미센을 연주하며 슬픔을 토로하고, 아내 오사토는 눈먼 남편을 위해 매일 쓰보사카 절에 불공을 드려왔다고 고백하는 장면이다. 분라쿠 인형은 3명이 각각 역할을 나눠 조종하기 때문에 섬세한 동작 표현이 가능하다. 눈꺼풀의 움직임은 물론, 손가락 마디의 구부림까지 조절할 수 있어 물건을 쥘 때나 감정을 표현할 때에도 자연스러운 동세가 표현된다.


사와이치의 옷소매 뒤쪽을 유심히 보면 쉽게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특수한 여밈 처리를 한 것이 눈에 띄는데, 이는 옷소매를 뒤집어 짧은 시간에 화려한 옷으로 변신하는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다. 오해를 푼 사와이치는 쓰보사카 절에 불공을 드리러 오사토와 함께 집을 떠난다. 단조로운 듯한 풍경 속에 소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집중시킨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사와이치는 아내의 재혼을 바라며 계곡 아래로 뛰어들고, 남겨진 지팡이와 신발을 보고 남편의 죽음을 안 오사토도 뒤를 따른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한 관음보살이 두 사람을 살리고 사와이치의 눈도 뜨게 해주면서 막이 내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부부가 기쁨의 춤을 출 때, 두 사람의 허름한 옷이 순간 화려한 옷으로 변신해 흥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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