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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19세기 농민들의 목가적 일상-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 전

by 야옹서가 2005. 6. 17.
[미디어다음/ 2005. 6. 17] 19세기 초·중반 프랑스 파리 근교의 시골마을 바르비종을 근거지로 활동한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소박한 농민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8월 28일까지 이들의 그림을 소개하는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 전을 개최한다. 밀레, 코로를 비롯해 루소, 도비니, 트루아용, 디아즈, 뒤프레 등 총 31명의 작품 106점을 선보인 이번 전시는 평소 접하기 힘든 바르비종파 화가들의 작품을 한데 아우른 대규모 기획전이다. 아울러 사실주의의 거장 쿠르베의 작품도 전시돼 눈길을 끈다.


 밀레의 '밭에서 돌아오는 길(1873)'. 석양을 등에 이고 돌아오는 부부의 모습이 부드러운 필치로 그려졌다.
 
19세기 초 프랑스.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 이름난 파리에서 불과 60km 떨어진 곳에 시골 마을 바르비종이 있었다. 파리와 가까우면서도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모습에 반한 화가들은 종종 바르비종 인근의 퐁텐블로 숲을 찾아 목가적인 풍광을 그림으로 남겼다.

기록에 따르면 1822년 카미유 코로가 퐁텐블로 숲에 들어와 유화 습작을 남겼다고도 하는데, 이 무렵만 해도 바르비종에는 여관이 없을 만큼 외부 왕래가 적었다. 그림을 그리다 숙박이라도 하려면 화가들은 퐁텐블로 숲에서 한 시간 거리의 다른 마을까지 무거운 짐을 이끌고 걸어가야만 했다.

그러나 1824년 바르비종 마을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던 프랑소와 칸느가 여관을 열면서 1830년대부터 칸느 여관을 거점으로 삼은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등장하게 된다. 여관 주인 칸느는 수입이 변변치 않았던 화가에겐 여관비를 깎아주기도 하고, 밥값을 받지 않는 대신 벽이나 가구에 장식화를 그려달라며 화가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지원하곤 했다.

파리와 가까운 덕에 그림을 팔거나 전시하기 유리한 입지인데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시골 마을의 일상을 늘 접할 수 있고, 가난한 화가들을 지원해주는 여관 주인까지 등장하면서 바르비종은 자연스럽게 화가의 마을이 되어 갔다.

오늘날 바르비종파 화가의 대표로 손꼽히는 밀레(Jean-Francois Millet, 1814~1875)가 1849년 바르비종에 정착했을 때 칸느 여관에 화가 40명이 북적거릴 정도였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당시 ‘바르비종파 화가’란 이름보다 ‘칸느 여관의 화공’들로 불렸던 이들 화가들은 1872년에 이르러 바르비종 마을 인구 350여 명 중 100여 명을 차지할 만큼 번성했다. 활동 당시에는 특정 유파를 결성하지는 않았으나 이들은 유사한 화풍으로 인해 후대에 ‘바르비종파’ 화가로 불리기에 이른다.

 
특히 바르비종에서 27년을 머물며 농민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낸 밀레는 초기에 프랑스 부르주아 계층의 화려한 초상을 그리기도 했으나, 점차 농민의 삶에 매료되면서 힘겨운 노동을 영위해 가는 시골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감동을 준다.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자료와 상상에 의거해 그린 이상주의적 풍경화가 아닌 실제로 야외에 나가 그린 그림의 생동감 넘치는 힘을 보여주었다. 빛과 공기의 미묘한 어울림을 자유롭게 묘사한 이들의 그림은 미술사적으로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으며 이후 인상주의의 태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밀레가 1855~1860년경 그린 '우물에서 돌아오는 여자'는 1975년 파리에서 열린 ‘밀레 사후 100주년’ 전에 출품됐던 작품이다. 단단하게 묘사된 여인의 몸과 두 팔에서 강한 생명력이 넘쳐난다.

 


가장 뛰어난 프랑스 낭만주의 풍경화가로 평가받는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1875)의 1865~70년경 작 '데이지를 따는 여인들'. 치마폭 한가득 꽃을 따 안은 여인들은 아름다운 숲의 정경에 둘러싸여 더없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종교적, 역사적 내용을 배제하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충실히 재현한 코로의 작품. 현장성을 살린 풍경화의 가치를 주장했던 그의 그림은 후대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풍경화로 유명한 루소(Theodore Rousseau, 1812~1867)의 1850~60년경 작품. 루소는 1827년 퐁텐블로 숲의 풍경을 그렸고 1933년에는 바르비종 인근의 샤이이 마을에서 머무르며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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