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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인터뷰

손바닥만한 판화에 새긴 애서가의 초상-남궁산

by 야옹서가 2001. 6. 19.

 June 19. 2001
| 장서표는 책의 소유자 표시를 위해 만들어진 실용적인 그림이지만, 최근에는 ‘책 속의 작은 예술’로 불리며 애서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판화가 남궁산씨(40)는 국내 최초로 1993년 ‘세계의 장서표’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장서표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데 앞장서왔다.

내 책을 특별하게 하는 그림, 장서표
남궁산씨는 자신의 작업을 가리켜 ‘그림으로 시를 쓴다’고 표현한다. 문학과 예술이 접목된 대중적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장서표를 제작하기 때문이다. 평소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신경림씨의 민요연구회, 유홍준씨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들으며 문화운동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처음에는 민중미술의 직설적 표현방식에 익숙했던 그였지만, 1989년 전교조 사업단의 문화상품 제작을 계기로 달력, 엽서, 편지지 등을 만들면서 대중성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판화를 대중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미술대동잔치’, ‘시와 판화의 만남’ 같은 기획전을 성공리에 치러냈다.

미술의 대중적 소통에 관심을 쏟던 남궁산씨는 1991년 그의 첫 개인전을 찾아온 조선족 판화가 황태화씨와 이수산씨를 통해 장서표를 처음 접했다. EX-LIBRIS라는 글귀가 새겨진 작은 판화에 담긴 문학적 향취와 상징성을 보고 장서표에 매료됐고, 이를 계기로 관련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일본 장서표 협회와 연락을 취해 세계의 장서표를 대여했고, 국내 판화들에게도 작품 제작을 의뢰해 1993년 영풍문고에서 국내 최초로 ‘세계의 장서표’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장서표에 대한 인식이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장서표를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다른 판화가들이 이벤트성으로 작업을 한 거라, 전시 끝나고 나니까 다음엔 장서표를 안 하더라구요. 하긴 그전까지는 저 자신도 ‘장서표는 판화가의 여기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소련이 무너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데, 정신적인 혼란을 느끼고 술로 허송세월 하다가 어느 순간 생각한 게, ‘내가 지금 잘 할 수 있는 건 뭘까, 그게 장서표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1995년에 현화랑에서 장서표전을 열었죠. 1996년인가 판화미술제가 처음 생겼을 때도 장서표를 갖고 갔었고…”

예술도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담아야
남궁산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그때 작업했던 장서표들을 구경할 수 있다. 전자우편으로 그와 연락할 수도 있는데, 극소수 사람들만 아는 대가가 되는 것보다는 이렇게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사는 게 더 좋다고 한다. 남궁산씨는 인터넷의 힘을 높이 평가한다. 그렇다면 일반인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판화가 아닌 컴퓨터 그래픽으로 장서표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저는 환영해요. 판화라고 꼭 조각도만 떠올릴 게 아니라, 사람들이 익숙하게 사용하는 컴퓨터로도 작업하면 좋죠. 그리고 컴퓨터로 프린트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볼 때 판화에요.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이 있듯이 그림도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고 살 것인지가 문제인데, 미술작품도 아마 그렇게 갈 거로 생각해요."

남궁산씨는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고 장서표를 함께 붙여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계획을 마음 속에만 담아두고 있다. 남을 평가하는 글을 쓰기에 마흔이란 나이가 아직 이르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선 오는 8월 장서표 기획전을 준비중인데, 그의 판화 70여 점에 안도현·윤대녕·박남준·최재봉·이순원 등 작가 8명의 글을 붙인 우정집 <생명, 그 나무에 새긴 노래>가 전시 일정에 맞춰 이룸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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