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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인터뷰

사랑하는 사람 보듯 그림 보세요-미술평론가 이주헌

by 야옹서가 2001. 7. 3.

 Jul. 03. 2001
| 이주헌씨는 서양미술의 전도사다. 그의 직함은 ‘아트스페이스서울 관장’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신화 그림으로 읽기》 등 대중적인 미술서의 저자로 더 익숙하다. 그의 글은 술술 잘 읽히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직접 발품을 팔아 세계 각지의 예술명소를 다니며 쓴 글인 만큼 그 생생함이 책상물림으로 쓴 글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미 8권의 미술서적을 펴낸 바 있는 그가 이번에는 어렸을 적 화가의 꿈을 키우며 동경했던 예술의 성지 프랑스를 다룬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기행》을 들고 나왔다. 프랑스 내의 미술관 이외에도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 반 고흐의 집, 라스코 동굴, 몽마르트르, 페르 라 셰즈 묘지 등 예술가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14개 지역을 방문하며 쓴 17편의 감상기가 실렸다. 완성된 원고의 분량이 예상보다 많아 한 권으로 압축하는 과정에 원고를 대폭 줄여야 했지만, 대신 프랑스 각지의 미술관 정보를 간략하게 실어 미술관 기행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저널리스트의 시각으로 그림보기
이주헌씨는 이 책에서 그림을 선정할 때 ‘동시대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 기자로, 미술지 《가나아트》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쌓아온 이력 때문인지, 저널리스트의 관점으로 그림을 접하게 된다고. 신문을 통해 한 시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그림에도 시대의 흐름이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책의 첫머리에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대표적 예로 손꼽히는 6명의 칼레 시민들을 재현한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을 언급한 것도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임이 결핍된 한국 사회를 안타깝게 여겨서다.
이주헌씨는 또한 퐁타방과 타히티의 여인들을 그린 고갱이 원시성의 순수함을 예찬하기보다 당시 유행하던 이국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임을 지적하고, 운터린덴 미술관에 소장된 ‘이젠하임 제단화’의 예수에게서 신념을 위해 고통을 감수해온 수많은 인간의 모습을 읽어낸다.

이주헌씨가 말하는 그림 감상은 타인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기만의 시간이다. 현실적인 문제에 얽매인 사람들도 어떤 그림을 통해 자신의 느낌을 얻을 때 정신적 해방을 경험한다. 이주헌씨가 해방을 강조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미술을 지식으로 받아들이면 그 해방의 순간을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가장 좋은 감상법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듯 작품을 대하는 것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을 해부학적으로 뜯어보고 심리학적으로 분석해서 좋아하게 되나요? 그건 아니거든요. 그림을 볼 때도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처럼 하면 돼요. 작가의 의도와 내 느낌이 다르다고 해도 그건 틀린 게 아니에요. 그림에 대한 느낌에 정답이란 건 없으니까요. 저도 글을 쓸 때 사실에 기반해야 하는 부분은 책을 참고해서 쓰지만, 그림의 느낌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철저하게 제 감상에 따라 글을 써요.”

이주헌씨는 일반인들이 부담없이 접할 수 있는 미술서적으로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을, 비교적 평이하게 씌어진 미술사 입문서로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꼽았다. 그러면서도‘그림과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전시장에 자주 와서 그림을 보는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주헌씨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인생과 예술은 등가(等價)’다. 그가 지금까지 미술기행을 다니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으로 조그마한 중세 이콘화를 꼽는 것도, 허세부리지 않는 장인정신으로 제작돼 그림 속에 기능인으로서의 소박한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거울처럼 틈틈이 마음을 비춰보고 닦을 수 있는 그림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 이주헌씨가 그의 ‘행복한 그림 읽기’에서 얻는 작은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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