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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인터뷰

실크로드 따라 명상하는 여행가-소설가 정찬주

by 야옹서가 2001. 8. 7.

 Aug. 07. 2001
| 소설가 정찬주씨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하나는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의 작가로, 다른 하나는 각종 매체에 꾸준히 기고해 온 암자 기행문의 필자로서다. 어느 경로를 통해 그와 만나더라도 불교에 기반한 창작활동이란 공통점으로 환원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실상 정찬주씨는 법정스님께 ‘무염’이란 법명도 받은 바 있는 독실한 불교신자다. 평소 국내의 고즈넉한 암자나 중국, 인도 등지로 여행 떠나기를 즐겨온 만큼, 그가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돈황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실크로드를 따라 고사성어의 현장을 가다
2000년 여름과 2001년 3월 두 차례에 걸친 중국여행을 토대로 쓴 《돈황가는 길》(김영사)은 일종의 실크로드 기행문이다. 함양과 서안을 거쳐 돈황에 다다르고, 다시 신강성의 투루판, 천산북로 끝자락에 있는 도시 우루무치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이 소설가 특유의 세밀한 풍경 묘사와 함께 이어졌다. 함양의 화청궁에서는 양귀비의 미모에 주변 여인들의 화장한 얼굴이 빛을 잃었다는 ‘무안색(無顔色)’의 유래가, 진시황릉에서는 ‘분서갱유(焚書坑儒)’와 ‘지록위마(指鹿爲馬)’란 고사성어의 유래가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펼쳐졌다. 이백과 두보, 왕유와 백낙천 등 당대를 풍미한 시선(詩仙)들에 얽힌 이야기도 돈황가는 길의 풍광과 함께 어우러졌다.

특히 돈황 막고굴에서 정찬주씨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 막고굴은 수많은 구도자들이 굴을 파고 벽화와 조각상을 만들며 수도했던 곳으로 혜초 선사가 《왕오천축국전》을 썼던 곳이기도 하다.‘석굴 화랑’이란 표현을 쓸 만큼 아름다운 작품이 많은데, 4세기 중반부터 1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들어진 석굴이 6백 개가 넘는다. 따라서 발굴중이거나 보수공사중인 곳도 있어 그 면모가 전부 파악되진 못했는데, 정찬주씨는 이 일반인에게 미공개된 굴 중에서 독특한 양식의 조우관(鳥羽冠)을 쓴 삼국인을 발견한 것이다. 기존에 발견된 조우관이 양옆에 깃털이 꽂혀있는 모양인 데 비해 그가 발견한 조우관은 깃털이 앞쪽에 꽂혀있다. 석굴의 조성시기가 당나라 중기인 까닭에 이 삼국인은 통일신라인으로 추측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돈황 막고굴에서 발견한, 조우관 쓴 삼국인
“안내원을 설득해서, 당나라 때 만든 석굴 중에 ‘유마경변상도’가 그려진 곳만 추가로 볼 수 없느냐고 했지요. 조우관을 쓴 삼국인은 거기에 주로 등장하니까요. 그중 237굴에서 발견된 조우관을 쓴 삼국인은 젊은 얼굴로 볼 때 신라의 화랑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제가 전문적인 학자가 아니니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작가로서의 직관만 믿고 본다면 그런 느낌이 듭니다.”
정찬주씨는 자신의 직관임을 전제로 한 의견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학계의 정밀한 검토가 뒷받침돼야 할 일이지만 이렇듯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소설가라면 응당 해봄직한 일이다.

그의 기행문을 보면 ‘나’라는 1인칭 대신 일관되게 ‘나그네’라는 3인칭을 쓰는 것이 눈에 띈다. 비단 《돈황가는 길》뿐 아니라 그가 지금껏 써온 암자 기행문에서도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정찬주씨는 자신을 나그네로 지칭하는 이유가 ‘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돌아오기까지, 그 시간 동안은 나를 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국 각지의 암자를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던지 그는 얼마 전부터 전남 화순의 작은 암자 쌍봉사 윗자락에 ‘이불재’란 집을 짓고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여행은 명상과 방랑, 탐사가 어우러진 종합행위
“이불재요? 귀 이, 부처 불, 집 재자를 써요. 솔바람에 귀를 씻으면서 부처의 마음을 배우고 닦아 가는 집이라고 해석하면 될까요. 한국에 돌아오면서 ‘돈황의 막고굴을 멀리 중국에서 찾을 것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불재에도 막고굴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국어교사로 재임하고 샘터출판사에서 일한 기간이 총 20년 정도 되거든요. 그 시기를 사회에 봉사한 걸로 생각하고, 이제는 제 자신이 임간기(林間期)를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숲 속에서는 식영(息影)이라고 해서 그림자가 없어지지요. 숲 그늘 속에서 그림자도 쉬는 거예요. 이제 그럴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이번 돈황 기행을 계기로 고사성어의 고향을 찾아가는 기행문도 써보고 싶다는 정찬주씨는 현재 월간 《작은이야기》에 암자 기행문 ‘작은 절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올 겨울에는 일본에 남겨진 백제 성왕과 왕인의 흔적을 중심으로 고대 한일불교사를 되짚어본 소설을 아래아출판사에서 펴낼 예정이다. 또 내년 5월경에는 민음사에서 인도 기행문 《붓다 기행》을 펴내기로 했다. 그의 말처럼 ‘명상과 견문, 수행과 방랑, 그리고 탐사가 어우러지는 종합행위’가 여행의 참 의미라면, 그의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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