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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인터뷰

매혹과 비판 사이를 떠도는 유목민적 평론가 - 문학평론가 권성우

by 야옹서가 2001. 11. 7.

 
Nov 07. 2001 | 희망이란 단어는 언뜻 진부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의의만큼은 사소하다 할 수 없다. 특히 문학평론가 권성우(동덕여대 인문학부 교수, 39)씨에게 ‘희망’은 새로운 문학에 대한 염원과 변화를 향한 갈망을 의미한다. 그가 올 10월말 펴낸 평론집 《비평의 희망》(문학동네)을 《비평의 매혹》(1995), 《비평과 권력》(2001)에 이은 ‘3부작의 완결편’이라 일컫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발표한 글을 다듬어 펴낸 《비평의 희망》은, 6년 전 당시 의욕적인 신생출판사였던 문학동네에서 평론집을 출간하기로 했던 약속을 뒤늦게 이룬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사와 더불어 이른바 ‘문학권력’ 문제로 논쟁을 빚었던 문학동네와는 미묘한 상황이 되긴 했지만, 권성우씨는 “서로를 자극과 성찰의 대상으로 생각하길 바라며 책을 냈다”고 밝혔다.

미시적인 권력의 관계망을 주목해
문단에서 어느 쪽의 편가르기에도 가담하지 않는 비판적 글쓰기를 주도해온 권성우씨는 그동안 문학권력 논쟁의 발화자로 지목돼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다양한 글 중 특정 부분만 조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비평의 희망》에서는 이런 쟁점적 부분보다 문학의 본질과 운명에 대한 사유를 담은 글과 함께 다양한 형식의 비평적 에세이를 선보였다.

“《비평의 희망》은 절 둘러싼 평면적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출사표인 셈이죠. 최근 제기된 권력 문제는 거대권력보다 인간과 인간, 혹은 출판사 사이 등 미시적인 권력의 관계망을 주목한 겁니다. 그 미시적 권력이 글쓰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비평가 역시 본질적으로 권력적일 수밖에 없고 저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문제는 권력의 유무 차원이 아니라 ‘주어진 권력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성찰하고 공정하게 행사하느냐’입니다. 비평가가 출판사에서 편집위원이나 기획위원으로 일할 수는 있겠지만, 비평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둬야겠죠. 또 하나 제가 비평가로서 강조하는 것은 비평에 대한 자의식입니다. 남과 비슷한 비평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에세이, 편지, 대화 등 다양한 비평적 형식을 활용하는 건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평론과 달리 새롭게 쓰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제가 추구하는 ‘전복적 상상력’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문학을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늘 새로워야 한다는 것이 권성우씨의 생각이지만, 그가 공감하는 작가들은 대개 인생의 곰삭은 연륜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작가들이다.

“젊은 작가들도 나름대로 독자성과 매력이 있긴 하겠지만 올해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 중 제가 공감하는 분들은 김원일 선생님이나 황석영 선생님처럼 문학적 연륜과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분들입니다. 굳이 젊은 작가들을 꼽자면 소설가 김연수, 김영하씨를 상당히 좋아하고, 고종석씨도 공감이 가는 작가고요. 시인 중에서는 이정록, 박정대, 이면우씨 작품을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권성우씨는 근 6, 7년 간을 천리안에서 ‘nomad33’이란 아이디로 지내왔다. 아이디가 또 다른 정체성의 표현임을 감안하면, nomad란 아이디는 비평가로서 그가 갖는 유목민적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유목민이라는 개념이 어느 정도 상투화됐지만, 저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그 개념을 써왔어요. 물론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어떤 편견, 이념, 제도적인 구조로부터도 자유롭기를 원해요. 굳이 나누자면 저는 자유주의자이고, ‘회의하는 성실한 허무주의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일종의 정신적 유목민처럼, 항상 기존의 생각에서 탈피해 새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의미에서 nomad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죠.”

매혹과 비판 사이, 그 경계선을 오가며
 권성우씨가 텍스트 비평과 더불어 메타비평에 비중을 두는 것도 일종의 역할 분담이라 설명한다. 문예지에 실린 평론 중 비평가에 대한 비평이 채 5퍼센트도 되지 않는 현실에서, 자신이라도 이를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최근 메타비평에 비중을 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책으로 묶지 못한 작가론도 많이 남아있어, 이를 모아 내년쯤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제 비평은 매혹과 비판 사이의 어떤 경계선상에 있습니다. 어떤 작품의 장점을 발견했을 때는 그 매혹에 대해 흔쾌히 자발적인 에세이를 쓰고 싶어지고, 또 그 반대의 경우에는 정말 소신 있는 비판을 하는 게 제 비평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에요. 서로 상반되는 정서로 보이는 두 지점을 추구하는 것이 모순되게 보일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이 제 비평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겠죠.”

작가에게 평생을 천착할 주제가 있듯, 평론가에게도 평생 마음에 새겨둘 화두가 있다. 권성우씨에게 있어 이 화두는 ‘매혹과 비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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