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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인터뷰

우리 소리를 담은 대중 음악을 꿈꾸며-월드뮤직그룹 '바이날로그'

by 야옹서가 2005. 12. 4.


[문화와나 2005년 가을호] 창작 타악 그룹 푸리, 국악 실내악단 슬기둥 출신으로 타악 보컬을 맡은 장재효(36),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O.S.T 디렉터였던 베이시스트 이상진(36), 국립국악원 관악 주자 출신 이영섭(28), 국악 작곡을 전공한 키보디스트 양승환(27)이 의기투합해 2003년 1월 결성한 ‘바이날로그’. 그룹 연륜은 짧지만 멤버 각자의 음악 경력은 10여 년을 헤아린다.
국악과 양악이 조화로이 공존하는 바이날로그의 음악을 창작 국악, 혹은 퓨전 국악이라 부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 국악 재즈라 칭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실상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전통 국악과 창작 국악 사이의 완충 지대 
‘바이날로그’는 전통 국악의 연장선에 있는 다른 창작 국악 그룹과 달리, 철저히 대중 음악을 지향한다. 다만 연주하는 악기나 음악 어법을 국악이나 양악 어느 하나로 국한하지   않을 뿐이다. 필요하면 제3세계 전통 악기나 민속 리듬도 자유로이 차용한다. 한국적 그루브의 새로운 전형이라 그들의 음악을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크로스오버나 퓨전이란 이름으로 시도된 기존의 창작 국악이 정착되지 못한 것은, 대중 음악다운 보편성이 없어서였지요. 국악을 쉽게 풀긴 했지만 일반인들에게 생경하긴 마찬가지였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좋은 음악이라도, 따라 하기 어렵다면 보편화되기도 힘들잖아요.” 타악 주자 장재효의 말은 전통 국악부터 창작 국악까지 두루 겪어 본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한층 설득력이 있다.

이들이 지향하는 대중 음악이란, 키보디스트 양승환의 정의처럼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대중 가요도 아니고, 소위 ‘뽕짝’ 기운에 젖어 흐느적대지 않고도 충분히 한국적 정서와 흥겨움을 담은 그 무엇”이다. 경쾌한 소금 선율과 라틴 리듬을 접목해 뛰노는 닭의 모습을 묘사한 '치킨 런', 제주 민요를 흥겨운 보사노바로 편곡한 '너영나영'을 듣다 보면, 멜로디 이전에 리듬감을 강조하는 바이날로그의 음악적 지향점이 명확해진다.

“보사노바는 브라질 토속 리듬에서 출발했지만 전 세계인이 즐기는 음악이 됐잖아요? 자메이카 레게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고요. 저희 노래를 통해 이를테면 휘모리가 월드 뮤직으로 보편화 되거나 한국을 대표하는 진정한 케이 팝(K-POP)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국악인 출신과 정통 록 밴드 연주자라는 태생적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네 사람이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보편성을 띤 음악으로 대중과 교감하고픈 음악적 갈증이 첫 번째 이유겠지만, 좀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가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네 명 모두 음악이든, 악기든, 음반이든 오래된 것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움을 창조해 내는 빈티지의 매력에 홀딱 빠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 모두 “그런 구닥다리를 왜 끌어 안고 있느냐”고 구박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동지를 만난다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LP음반을 지칭하는 은어 ‘바이널(Vinyl)’과 ‘아날로그(Analog)’를 조합한 그룹명 ‘바이날로그(Vinalog)’도 그런 연유에서 지은 이름이다.

“같은 음악을 LP로 들을 때와 CD로 들을 때 소리의 질감이 확실히 다르거든요. 약간 촌스러울지 몰라도 따뜻하고, 풍부하고, 질리지 않고 오래가는 느낌. 말하자면 ‘바이날로그’는 LP음반 같은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거죠.”  

오래될 수록 깊은 소리를 내는 악기처럼
만든 지 40년도 넘은 펜더 베이스를 즐겨 연주하는 베이시스트 이상진이 말문을 연다. ‘당당둥당’ 소리 내는 신형 베이스와 달리, 그의 펜더는 ‘뚝, 뚝 둥’ 하는 독특한 소리를 낸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저음의 미성을 자랑하는 신인 가수와, 조금은 능글맞고 시니컬한 중년 재즈 보컬의 차이 정도랄까. 사람들의 반응도 극단적으로 갈린다. ‘너무 좋다’가 아니면 ‘별로다’는 식이다. 중간이 거의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는 국악계에서 ‘바이날로그’를 바라보는 시선과도 거의 일치한다. 2003년 11월 첫 콘서트 때는 이단아처럼 바라 보는 국악계의 차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향점이 서로 다른 음악은 있을지언정, ‘틀린 음악’은 있을 수 없다”는 관악 주자 이영섭의 말처럼, 다양성이 존중될 때 새로운 음악의 창조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아직 현재 진행형인 ‘바이날로그’의 음악은, 10월 중순 발매될 2집 음반에서 좀 더 성숙된 모습으로 펼쳐질 것이다. 올해 11월 26일, 27일에는 용산에 새롭게 개관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집 음반 발매 기념 공연도 열 예정이다. 이영섭의 현란한 소금 연주를 비롯해, 장구와 꽹과리를 치며 헤드뱅잉 하는 장재효도 기대된다. 일렉트릭 키보드와 어쿠스틱 피아노를 자유로이 오가는 꽃미남 키보디스트 양승환이나, 40년 연륜이 배어있는 베이스 음색의 매력을 새롭게 전해 줄 이상진도 물론이다. 무엇보다 음반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바이날로그’의 진한 매력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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