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잡학가’. 소설가 김중혁을 설명하는데 이보다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직접 만든 홈페이지(www.penguinnews.net)를 운영하면서 소설가이자 카투니스트로 활동해온 이 작가의 이력은 어딘지 범상치 않다. 2000년 중편소설 ‘펭귄뉴스’(문학과사회)를 발표하며 등단한 지 6년, 첫 소설집 <펭귄뉴스>(문학과지성사)로 돌아온 그를 만났다. 

김중혁은 소설가 외에도 다양한 직업을 두루 거쳤다. 한때 인터넷서점의 서평 전문 기자였고, 홍대 앞 예술서점 아티누스 DVD팀장이었으며, 월간 <PAPER>의 음악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했고, 레스토랑 전문지 기자로 일하며 매달 단편소설 3편 분량의 기사를 토해낸 적도 있다. 작년 겨울에는 홍대 앞 희망시장 작가들을 인터뷰한 <놀이터 옆 작업실> 공동 필자로 재기발랄한 글 솜씨를 펼쳤다. 워낙 다양한 일에 관심을 분산시키다 보니, 소설집 출간이 다소 늦어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 이런 일들을 해왔냐고 묻는다면, 김중혁은 리눅스의 펭귄 로고처럼 멀뚱한 표정을 지은 채 “그냥 재미로”하고 답할 것만 같다. 그에게 있어 ‘의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재미’다. 예컨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격언을, 김중혁은 좀 다르게 해석한다. 돌려 말하면 이 말은 “짧은 인생, 아껴 써라”라는 뜻이란다. 인생이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짧기 때문에 예술보다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스티븐 킹의 말처럼 말이다.

골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창작에만 몰두하는 예술가 대신, 세상 밖으로 나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잡학가의 삶을 선택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김중혁의 첫 소설집은 이렇듯 그가 서른여섯 해 동안 쌓아온 경험과, 수집한 물건들, 영향 받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투영된 박물관이다. 이 기묘한 박물관에서는 사물 뿐 아니라 사람도 주요 수집품 중 하나다.

상상의 즐거움 일깨우는 구닥다리 사물들
거대한 지하실에 틀어박혀 무용지물인 개념만을 발명하는 ‘개념 발명가’ 이눅씨, 세계의 끝에서 배달된 에스키모의 나무 지도를 매개로 인생 항로를 찾는 지도 측량원, 자살한 친구가 남긴 암호 같은 약도를 쥐고 ‘바나나 주식회사’를 수소문하는 남자, 트리니티에게 이끌린 네오처럼 우연히 ‘비트 해방 전선’에 뛰어든 편의점 직원…. ‘펭귄뉴스’를 집어든 독자는, 책 속을 거닐며 일상 속 독특한 모험에 빠진 사람들과 접속하게 된다.

그러나 감각적인 묘사가 한층 돋보이는 건 작가가 사물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이다. 김중혁은 인간보다 사물에, 감정보다 감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가 편애하는 사물들은 순수하게 한 가지 기능에 충실한 것들이다. 낡은 타자기, 라디오, 자전거, 연필 등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됐던 평범한 사물은 작가가 매뉴얼을 쓰듯이 감정을 배제하고 조심스럽게 골라낸 언어의 옷을 입고 주인공의 자리에 등극한다.

김중혁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자극적인 영상 매체에 익숙해져 어느덧 무뎌진 상상력의 촉수가 예민하게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용지물 박물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DJ 메이비가 손끝으로 표면을 천천히 더듬듯 섬세한 언어로 잠수함의 형태를 묘사할 때, 이를 듣는 주인공이 전율을 느끼듯이 말이다.

소설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펭귄뉴스’ 역시 마찬가지다. 비트가 금지된 가상의 시대에 비트해방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소 생경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 속에 살아 움직이는 비트만큼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톰 웨이츠의 노래 속에, 껴안은 두 연인의 뛰노는 맥박 속에서도 비트는 흘러넘친다. 그 비트는 귓가에 바짝 다가와서는 드럼 치듯 심장을 리드미컬하게 두드리고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다.

지금은 소설가를 본업으로 삼고는 있지만, 원래 김중혁은 시인 지망생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그와 마찬가지로 시인이 되길 꿈꿨던 소설가 김연수와 둘이서 전지 두 장을 펼쳐놓고서 “이제 시제를 던지겠다” 외치고 시 쓰기 대결을 벌인 적도 부지기수였다. 시가 너무 좋아서, 대학도 좋아하던 시인 이성복이 교수로 있는 계명대로 갔다. 정작 입학하고 보니 이성복 교수는 불문과, 그는 국문과여서 수업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랬던 그는 군 제대를 전환점 삼아 소설가로 선회했다. 3학년으로 복학해 1995년부터 소설을 쓰면서 한 문장이 장장 두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실험적인 소설을 쓰기도 했다. 1996년 계명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으로 당선된 ‘놀이공원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의 경우, 놀이공원의 탈것들 이름으로 소제목을 대신했다. 습작기였던 이 무렵 지겹도록 형식적인 실험을 시도한 까닭에 오히려 요즘 쓰는 글은 상대적으로 담백해졌다고 한다.
 
못 말리는 수집광, 음악광, ‘관 중독자’
그는 소설의 재료로 자신의 수집광적 측면을 적절히 이용한다. 특히 소설 속에서 풍부하게 언급되는 가수와 음반 목록은 그의 음악적 취향에 기반한 것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마치 음반가게의 시디 진열대 하나를 뚝 떼어 온 것처럼 수많은 시디들이 알파벳순으로 분류되어 빼곡히 꽂혀 있다. 학창 시절, 일주일치 용돈 5만원을 받으면 바로 그날 3만원을 새 CD 사는 데 투자할 만큼 못 말리는 음악광이었으니 어련히 모았을까. 게다가 남은 2만원 중 1만5000원을 술 마시는 데 써버릴 만큼 술자리를 즐겼고, 최후의 5000원으로 일주일을 너끈히 버틸 만큼 생활력도 강했다. 주말이 다가와도 도무지 줄지 않는 생활비 게이지는 그의 탁월한 대인관계 능력과 선배들의 희생에 힘입은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김중혁의 수집벽은 CD뿐 아니라 책, LP, DVD, 전자제품, 인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때로 음악 CD를 샀다가, 그 음악가가 영화음악에 참여한 영화의 DVD를 사고, 관련된 책이나 피규어를 사는 식으로 수집 목록이 확장되기도 한다. 그는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 수집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간다.

또한 그는 미술관, 전시관, 박물관 등 ‘관’ 자가 붙은 곳이라면 만사 제치고 구경 가는 ‘관 중독자’이기도 하다. 단 영화관은 예외다. 영화나 TV 같은 영상 매체보다는 음악이나 미술처럼 보는 이의 감각을 촉발시키고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가 많은 대상을 좋아한다. 사물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곧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는 화려한 영상과 음향으로 두 시간 동안 보는 이의 머릿속을 씻어낼 뿐이지만, 소설은 얄팍하고 납작한 글자만으로도 독자의 뇌를 상상으로 충만하게 한다. 한때 시인을 꿈꿨던 그가 소설에 매료된 것은 이런 까닭에서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레고 블록’들로 구성된 소설적 자아
이처럼 다양한 경험과 취향의 집합체인 자신을 가리켜 김중혁은 ‘레고 블록’으로 명명한다. 한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조립과 해체를 반복하는, 무수히 많은 ‘레고 블록’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그가 경의를 담아 작가 후기에 언급한 ‘블록’들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레이먼드 카버 같은 소설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톰 웨이츠나 루 리드 같은 가수도 있고,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팀도 있으며, 팀 버튼이나 히치콕 같은 영화감독,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다이안 아버스 등의 사진가도 있다. 심지어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애플 아이팟, 전자신문까지 포함돼 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대상의 매력을 빨아들이는 잡학가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양한 ‘블록’들을 그저 한 자리에 모은다고 해서 소설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김중혁은 소설의 첫 번째 문장부터 세 번째 문장까지를 공들여 쓴다고 하는데 각각의 문장마다 기준이 있다. 첫 문장에는 무엇보다 시간이 담겨 있어야 한다. 첫 문장과 이어지는 두 번째 문장은 속도가 들어가 있어야 하고, 세 번째 문장은 스타일을 담고 있어야 한다. 어느 시점에서 끊어서 보여주고, 어디에서 최대한 덩어리를 압축할지도 중요하지만, 이 세 문장이 매끈하게 이어져야 비로소 남은 부분을 이어 쓸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등단한 지 6년 만에 첫 소설집이 나오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는 그는 “솔직히 수록작 중에서 ‘펭귄뉴스’와 ‘사백 미터 마라톤’은 치기어린 작품이라 빼고도 싶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굳이 초창기 소설들을 포함시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소설집이란 잘 다듬어지고 완성된 작가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 작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해왔는지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결국 두 소설을 책의 맨 마지막에 함께 실었다. 김중혁은 이 두 소설을 쓸 때  “엄청나게 에너지가 많고 반항적이었다”고 회상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소 유치한 점이 눈에 띄어도 그 시절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 위해, 그 부분을 남겨두고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다.
 
‘한국의 보네거트’를 꿈꾸는 펭귄 사나이 
 그가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세계나 거창한 철학을 제시하기보다는 한 소설가가 스스로 세계를 확장하면서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사물에 대한 관심, 감각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하면서 말이다.

김중혁은 한때 한국의 커트 보네거트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다고 한다. ‘펭귄뉴스’ 홈페이지에 링크된 블로그 주소도 보네거트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평론가들이 지지하거나 말거나 기괴하고 마이너한 글을 계속 써대는 보네거트처럼, ‘진짜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잃지 않고 초심을 간직한 채 글을 쓰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요즘은 소설을 쓰면서도 출판사 취직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아무래도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시끌벅적 일을 벌여야 다음 작품에 뛰어들 뒷심이 생길 모양이다.
 
글 고경원 프리랜서 · 사진 백종헌 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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