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와 나 | 2006년 가을호 ] 서양 음악과 한국 전통 음악의 감수성을 접목해온 작곡가 신동일의 음악을 가리켜 흔히 크로스오버, 또는 뉴에이지 음악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기 음악의 정체성을 확고히 인지시키기보다, 장르의 벽을 넘어 음악의 즐거움을 대중에게 전하는 일에서 더 큰 보람을 찾는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으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민족 음악을 추구하고, 어린이 노래극, 영화 음악, 국악 관현악 작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온 것도 그 때문이다.
“어떤 음악 하세요?”
작곡가 신동일은 이 무심한 질문에 내포된 ‘취향의 서열화’에 난색을 표한다. 많은 사람들이 장르를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클래식 음악은 고급 문화, 대중 음악이나 어린이 음악은 하위 문화라는 식으로 속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동일에게 음악은 장르에 따라 우열을 가늠할 대상이 아니다. 어떤 기법이나 양식을 취하든, 그것으로 제 음악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으면 된다고 그는 믿는다.

다른 작곡가들이 자신의 음악적 아우라를 공고히 할 형식미에 치중할 때, 신동일은 대중과 호흡을 함께 나누는 공연을 기획하며 무대를 꾸렸다. 투명 인간처럼 존재감이 희박하던 작곡가들을 무대 위로 이끌었고,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노래극을 선보였다. 2001년 6월 첫 연주 모임을 가진 작곡가들의 모임 ‘작곡마당’, 동시와 음악을 접목시킨 어린이 음악회 《신동일의 어린이 음악 세상-이상한 밤》이나, 놀이 노래극 《이야기 할아버지의 이상한 집》 《시리동동 거미동동》 등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 열린 마당으로
흔히 음악계가 어려운 이유를, 사람들이 음악을 돈 주고 사서 듣지 않는 데서 찾곤 한다. 하지만, 신동일은 그보다 먼저 음악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여긴다. 학교마다 존재하는 파벌의 울타리가 견고하고, 그 속에 다시 전공마다 겹겹이 쳐진 울타리가 타 전공과의 교류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음악 생산과 소비는 음악계 내부에서만 이뤄진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작곡 발표회나 연주회가 ‘그들만의 리그’에 머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스스로 내성적 성향이라고 토로하는 신동일은 남의 눈에 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연주자가 아니라 작곡가가 된 것도 그런 성격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에는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강백(李康白, 1947~)의 희곡집을 많이 읽었다. 한 번 집필을 시작하면 골방에 틀어박혀 바깥 출입도 않고 극작에만 몰두한다는, 이강백의 작업 방식에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이 아직은 유효한 모양이다. 닫힌 음악계의 현실이 그를 ‘조용한 혁명가’로 만들었다.

“성향은 내성적이었지만 우리 주변의 음악 환경을 변화시키고 싶은 욕망이 더 컸죠. 작곡만 해서 예술 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졌다면 이렇게 나서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작곡가나 연주가들이 무대에서 공연하고 싶어도 연결해 주는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누구도 그 역할을 해 주지 않으니까 결국 제가 하겠다고 나서게 된 거죠.”

지리멸렬한 삶 바꾸는 창작의 힘
그가 2001년 6월 출범시킨 ‘작곡마당’은 작곡가들이 꿈꾸는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1년에 2~4차례 열리는 작곡마당의 작품 발표회에서는 작곡가들이 무대에서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직접 자기 곡을 연주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음악계 내부의 ‘가족 잔치’가 아니라, 청중과 소통을 이루는 무대인 셈이다. 특히 획일적인 작곡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전공과 무관하게 작곡가를 꿈꾸는 사람들로 구성된 단체인 만큼, 저마다 다른 삶의 결에서 우러난 개성 넘치는 곡이 인상 깊다.

작곡마당 회원 중에는 디자이너이면서 작곡에 흥미를 느껴 곡을 쓰는 사람도 있고, 회사 퇴직 후 작곡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도 있다. 공대 중퇴생 신분으로 노동 운동을 하다가 쫓겨나 피아노 강사로 살아온 한 회원은 현재 작곡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자본의 힘에 속박되어 꿈을 접는 대신, 이렇게 작곡마당에서 활동하는 것을 계기로 삶의 방향을 극적으로 바꾼 회원들이 많다.

신동일은 작곡마당의 활동이 1980년대 민족 음악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같은 이상을 강요하는 구시대적 민족 음악을 고집하지 않는다.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는 미래의 민족 음악이 뿌리내릴 만한 환경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작곡마당 홈페이지(www.zakmadang.com)가 벌써부터 전국 각지에 흩어진 ‘잠재된 작곡가’들을 불러모으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국악과 양악 아우르는 어린이 노래극
신동일이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축인 일련의 어린이 노래극은 우리 동시와 전래 동요 등 노래뿐만 아니라, 놀이의 요소까지 아우른 색다른 시도를 보여 준다. 동시 작가 임석재의 작품에 곡을 붙인 ‘이야기 할아버지의 이상한 집’(2004)으로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제주도 꼬리따기 노래에 판소리 창법을 접목시킨 노래극 《시리동동 거미동동》, 클래식 음악에 타악 놀이가 어우러진 《귀뚜리의 음악 여행》 등으로 꾸준히 이어져 왔다.  

아직은 이런 형식의 놀이 노래극이 대중에게 낯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공연마다 라이브 연주를 하면서 가족 단위의 청중을 공연장으로 불러내는 견인차 역할을 해 냈다. 그가 선보인 노래극의 독특함은 국악과 양악의 오묘한 조화에서 나온다. 신동일은 선명한 서양 악기의 울림을 약간 모호하게 만들어 씨줄로 삼고, 질감이 풍부한 국악기의 소리를 날줄 삼아, 마치 직물 짜듯 두 악기의 성질을 교차시킨다.

“서양 악기는 지정된 음정을 정확히 찍어낸 듯한 선명한 소리를 추구하는데, 국악기는 그런 면에서 약간 모호한 대신 소리 자체에 풍성한 질감이 있어요. 그래서 서양 음악은 음을 많이 사용하는 대신, 우리 음악은 음을 적게 사용하고 소리 하나하나가 갖는 질감의 변화에 주목하게끔 했습니다.”


이밖에도 1997년 발표한 작곡 음반 《푸른 자전거》나, ‘듣는 그림책’ 『노란 우산』 역시 소리 소문 없이 사랑을 받았다. 영화 《꽃을 든 남자》(1997)의 영화 음악도 그의 솜씨다.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지 않았다 뿐이지, 해 보고 싶은 음악은 거의 시도해 볼 수 있으니 여한이 없단다.  
 
사심 없이 순수한 예술가로 살고 싶다
신동일은 “작곡가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좋은 음악을 하려고 노력한 결과로 작곡가가 되어야 한다”는 은사 이건영 선생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긴다. 아마도 음악 외적인 사교 모임과 파벌 형성에 치중하는 기성 작곡가들의 행태를 빗대어 던진 충고였을 것이다. 힘겹던 미국 유학 시절에도 이건영 선생은 “작곡가란 직업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 너의 내부에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목소리가 네 신념에 묻혀버리지 않게 하라”고 조언했다.

“악보에 그리는 작품들은 대체로 구조적이고 닫힌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제 작품 중 어떤 곡은 미리 작곡해놓은 곡이라기보다, ‘악보로 그려 놓은 즉흥 음악’처럼 즉흥적인 연주에 어울리는 형식이 많죠. 그런 음악이 연주자에게는 어려울 수 있지만 듣는 이에겐 아기자기하게 들리는 면이 있어요. 제 음악이 언제까지나 열린 자세로 사람들에게 한발씩 다가가길 바랍니다.”

신동일이 지금까지 화두처럼 지니고 살아온 신념은 ‘누구에게나 열린 음악’이다. 2003년 작곡마당 회원들의 첫 작품집 제목인 《장르의 벽을 넘어서》처럼,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포괄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사심 없이, 조용하고 꾸준하게 말이다. 


신동일 | 작곡가. 서울대와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1997년 발표한 뉴에이지 풍 피아노 연주곡 모음집 《푸른 자전거》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류재수의 그림에 그의 음악을 접목시킨 『노란 우산』은 2002년 뉴욕 타임즈 선정 ‘올해의 최우수 그림책’으로 뽑혔다. 《신동일의 어린이 음악세상-이상한 밤》(2003), 《이야기 할아버지의 이상한 집》(2004), 《시리동동 거미동동》(2004~2005), 《귀뚤이의 음악 여행》(2006) 등 놀이 노래극과 어린이 음악회를 발표해 왔다. 2003년 문화관광부 선정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2004 KBS국악대상 작곡 및 지휘 부문을 수상했다. 현재 ‘작곡마당’ 과 기획집단 톰방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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