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3만 원짜리 목숨

by 야옹서가 2008. 9. 28.
와우북페스티벌 지원 나가서 열심히 책 팔고, 찬바람에 얼어붙은 몸을 부비며 홍대입구역 지하철로 내려갔다. 금요일 밤의 홍대입구는 아수라장이었다. 인파에 밀리고 쓸려 간신히 계단을 내려오니,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끼고양이와 강아지를 파는 좌판이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할머니 앞에, 기운없어 보이는 강아지 두 마리, 한주먹도 안돼보이는 아깽이 서너 마리가 노끈에 묶여 있었다. 젖소무늬 아깽이는 자꾸만 할머니 팔뚝을 기어올랐고, 할머니는 귀찮다는 듯 고양이를 옷에서 떼어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누군가 값을 묻자 할머니는 "3만 원"이라고 했다. 3만 원짜리 삶. 누군가 사주지 않으면, 그 3만 원의 가치도 점점 떨어져 결국 버려지는 신세가 되겠지.

아마 저 고양이들은 팔려나갈 때까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것이다. 잘 먹고 큰 새끼고양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하지만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양이가 작고 어릴수록 팔 가능성이 높아지니, 굶는 동물들의 건강 따위야 관심이 없다. 굶겨서라도 작고 여린 모습을 유지해주는 쪽이 그들에겐 좋은 것이다. 뭐 어차피 다시 볼 것도 아닌데. 다시 본들 죽었다고 A/S를 해 달라고 할 거야, 어쩔 거야. 이런 마음인 게다.

길에서 고양이를 파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하지만 캣브리더가 키워서 분양하는 잘 자란 동물들이 이런 곳에 나올 리 없다. 노점 좌판에 떠밀려 나온 어린 동물들은 집냥이 새끼인 경우도 있고, 어미 길냥이에게서 탈취된 녀석들도 있을 것이다. 고양이를 구해야겠다는 연민 때문에 데려온 경험많은 애묘인이 아니라면, 잘 모르지만 단지 고양이가 귀여워서 충동구매하는 경우일 텐데, 그렇게 준비없는 입양이 가져온 결말은 가혹하다. 팔려가는 그들에게 준비된, 3만 원짜리 죽음을 보며 마음이 무겁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