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이 극에 달하면 살가운 위로의 말도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마음이 바닥으로 치달을 때, 사람들은 무심코 다가와 발치에 머리를 비비는 반려동물에게서 힘을 얻는다. 고양이와 인간이 결합된 그로테스크한 생명체를 그리는 화가 성유진씨에게도, 고양이 샴비는 우울증 치료제 같은 존재다.

성씨에게 우울증이 찾아온 건 대학을 다닐 무렵이었다. 겉으론 밝고 명랑해 보였지만, 감정을 억누르는 성격이 그의 마음을 좀먹었다. 절친했던 친구가 절교 선언을 하면서 감정이 폭주했다. 폭식과 구토를 반복했고, 일주일 만에 10㎏이 늘었다. 그러다 고양이를 키우면 우울함도 덜해진다는 말을 듣고, 2006년 봄 발리니즈 종의 수고양이 ‘샴비’를 입양했다.

“제 상상 속의 고양이는 얌전하고 새침한 모습이었는데, 샴비는 절 보자마자 거실을 가로질러 막 달려오는 거예요. 집고양이는 보통 산책을 싫어하는데, 목줄 매고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고… 고양이보다 개에 가까운 모습이 신기했죠.”

샴비가 오기 전에 성씨는 집에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샴비에게 말을 걸고 때론 티격태격 싸우면서 성격도 조금씩 밝아졌다. 늘 억누르기만 했던 감정도 자연스레 표출하게 됐다.

샴비와 함께 살면서 성씨에게 찾아온 변화가 또 있다. 예전에는 인체를 묘사하는 데 주력했던 그림 속에, 언젠가부터 고양이의 형상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안한 듯 떨리는 커다란 눈동자, 비틀리고 꺾인 팔다리를 토해내는 얼굴 속에 내면의 그림자와 싸우는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우울증을 딛고 일어선 성씨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의 정체를 탐색하는 ‘불안 바이러스’ 연작을 시작했다. 500곳의 블로그에 트랙백을 보냈고, 그중 70여 곳의 블로그에서 보내온 트랙백을 토대로 그림을 그렸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불안의 원인은 다양했지만 ‘인간관계’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어요. 전시가 끝나도 ‘불안 바이러스’ 작업은 계속될 거예요.”

블로그(www.sungyujin.com)에서 시작된 ‘불안 바이러스’전은 부산 대안공간 반디(051-756-3313)에서 이달 31일까지 열린다. 서울 이태원동 갤러리카페 엔스페이스(N-space·02-793-3433)에서도 다음달 20일까지 그의 고양이 그림들을 볼 수 있다.

* 한겨레esc 연재분 중 하나였는데, '예술가의 고양이' 카테고리를 신설하면서 분류를 이동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