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저,원래 얼굴이 이래요" 소심한 길고양이

by 야옹서가 2009. 2. 1.
서울의 한 사찰 안에서 만난 이 고양이는 절밥을 얻어먹고 살아갑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길고양이라기보다는, 절고양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반 정착 상태로 살아가니까요. 

보통 대학 캠퍼스나, 혹은 절 안에 거처를 마련한 고양이들은 그나마 여느 길고양이보다 생활하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학교 길고양이의 경우에는, 학생들 중에 고양이를 좋아하고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어 사료나 간식을 갖다주기도 하고, 학생식당에서 꾸준히 나오는 잔반이 있어 이것을 주식으로 삼기도 합니다. 절고양이의 경우, 생명을 중시하는 곳이기에 길고양이를 쉽게 내치지 않는 경우가 많답니다.

하지만 별로 근심이 없을 것 같은 절고양이 팔자인데도, 어쩐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이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아마 눈동자를 덮은 처진 눈두덩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양이에게도 '인상'이 있습니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 같지만, 무늬나 눈동자의 색깔 말고도 얼굴 비율이나 눈매에 따라 다른 느낌이 들죠. 고양이가 있는 곳까지 안내해주신 분은 이 녀석을 '진순이'라고 불렀지만, 어쩐지 진도개가 생각나는 이름이라서;; 저는 마음 속으로 '소심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커플이 고양이에게 장난감을 주며 놀아주고 있었는데요, 소심이는 그분들이 잠깐 놓고 간 장난감을 획득했지만 여전히 소심한 모습입니다. 의기양양하기는커녕, 어깨를 수그리고 소심하게 눈을 올려뜬 모습이 어쩐지 안쓰러워 보입니다. "어이, 이 시점에서는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하고 격려를 던져주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장난감을 잡기 위해 앞발을 휘두를 때조차 소심한 눈매는 그대로입니다.. 처진 눈두덩에 눈썹까지 아래로 무겁게 처져서 더욱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약간 아방해 보이는 것이 소심이의 특징이자 매력입니다.


하지만 소심이에게도 얼짱 각도는 있었군요. 눈을 올려뜨면 그나마 덜 소심해 보입니다. 길고양이를 찍으면서 고양이 장난감을 갖고 다닌 적이 한번도 없었던 지라, 길고양이 노는 사진은 처음 찍어봅니다. 안내해주신 분이 장난감으로 놀아주셔서 촬영이 가능했답니다.  

절 뒷산 쪽으로 멀찍이 도망갔던 소심이가, 갑자기 산비탈을 미친듯이 뛰어내려옵니다. 아까의 소심한 모습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날렵한 모습입니다. 소심이가 뛰어내려간 곳을 가만히 바라보니, 고양이 장난감을 갖고 절에 놀러왔던 다른 커플이 간식캔을 따서 밥그릇에 놓아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 커플은 제가 밀레니엄고양이에게 느끼는 친밀도만큼, 이곳 절고양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보살펴온 듯합니다. 약간의 질투심을 느끼면서^^; 달아나는 소심이를 마지막으로 찍어봅니다. 집과 멀어서 자주 오지는 못하겠지만, 절에 들르면 한번쯤 소심이의 흔적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