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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일본

자전거 타는 일본의 강아지

by 야옹서가 2009. 2. 12.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 고양이가 자발적으로 산책을 즐기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스밀라는 우리 집으로 입양되기 전에 한번 버려졌던 기억 때문인지, 밖에 나가는 극도로 무서워한다. 얌전히 품에 안겨 있다가도, 신발 신고 나가려는 시늉을 하면 침을 꿀꺽 삼키면서 발톱을 내밀어 어깨에 박고는, 뒷발로 밀치며 아래로 뛰어내린다.

 

한번은 바깥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이동장에 넣어 공원으로 데리고 나왔더니, 스밀라는 땅바닥에 붙은 껌처럼 벤치를 껴안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괜히 불안한 마음만 자극할 같아 다음부터는 고양이와 함께하는 산책을 포기했다. 고양이가 겁먹지 않게  바깥구경을 시켜줄 수는 없을까?

 

오사카의 복고양이 신사에서 만난자전거 강아지를 보고 스밀라를 생각했다. 자전거 뒷좌석에는 강아지가 타고 있었다. 연세가 예순쯤 되어보이는 할머니는 부드러운 솜씨로 자전거를 멈춘 다음, 강아지를 잠시 혼자 놓아두고 신사로 들어갔다. 보슬비가 내리는 날이어서 어지간하면 산책을 포기할만도 하건만, 할머니는 솜씨좋게 비닐우산을 자전거에 장착시켜 문제를 해결했다. 자전거와 우산과 강아지, 기묘한 조합을 보고 있자니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때마침 나타난 젖소무늬 길고양이를 쫓아 한참 사진을 찍고 있었던지라, 자전거 탄 강아지의 모습도 함께 몇 장을 찍었다. 강아지는 외출 나와서 할머니를 기다리는 상황이 익숙한 듯, 앞발을 모으고 부동자세로 앉아있었다. 얼굴을 보니 아주 어린 녀석은 아니다. 사람으로 치면 적어도 장년기에는 접어들었음직한 얼굴이다.

아마도 할머니는 매일 강아지와 산책을 했으리라. 집에서도 늘 함께 가족처럼 지냈을 테고. 보고 있어도 그리운 강아지를 떼놓고 외출하기엔 마음이 편치 않아서 장보러 갈 때나, 산책하러 갈 때도 언제나 뒷좌석에 태우고 세상 구경을 시켜주었을 것이다. 씽씽, 눈 뒤로 빠르게 지나치는 세상을 보며 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처음 보았을 땐 할머니에겐 이 개가 아이 같은 존재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개는 '할머니와 함께 노년을 준비하는 사이'가 아닐까. 사람보다 4배 정도 빠른 속도로 여생을 살아가는 개에겐, 그럴 것이다.이 개는 할머니와 세월을 공유하며 천천히 늙어왔을 것이고, 그에게 허락된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 20분쯤 흘렀을까, 볼일을 마치고 할머니가 신사를 떠난다. 할머니가 오자 그제서야 일어선 개는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린다. 이제 좀 세상 구경을 할 마음이 생긴 모양이다. 멀어지는 할머니와 개를 눈으로 배웅해본다. 나도 언젠가 스밀라를 데리고 산책할 날이 올까. 그땐, 아주 느릿느릿한 속도로 스밀라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 만약 스밀라가 자전거를 무서워하면, 유모차처럼 생긴 이동장을 구해서 태워주어야지.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아닌, 좀 더 넓은 세상을 스밀라에게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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