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샘터' 웹진 www.isamtoh.com / 2001. 1]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2001년 1월 25일까지 열리는 ‘이인성 작고 50주기 회고전’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이인성(1912~1950)은 인상주의 화풍을 한국인의 시각으로 탁월히 소화해낸 작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1950년 불의의 총기 오발 사고로 사망하면서 작품 세계가 묻혀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1972년 서울화랑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로, 작품 95점과 당시의 보도자료ㆍ사진ㆍ유품 등이 전시돼, 이인성의 그림과 삶의 궤적을 조망했습니다.

191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인성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11세에 오늘날의 초등학교 격인 수창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데다, 보통학교 졸업 후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대의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두 차례 입선하고 20세에는 특선을 수상한 그의 자질을 눈여겨본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떠납니다.

낮에는 도쿄의 오오사마 상회에서 일하고, 밤에는 태평양미술학교 야간부에서 그림 공부를 하면서 본격적인 근대 미술 수업을 받게 되지요. 이후 이인성은 일본과 한국에서 잇단 수상 소식을 전하며 1937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 추천 작가가 되는 등 작가적 위상을 굳혔습니다. 그의 왕성한 창작 활동은, 당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제전인 조선미술전람회에 1929년부터 1944년까지 한해도 빠짐없이 출품한 것에서 확인됩니다.

대개 수채화는 종이에 그려지는 것이 보편적인데, 전시된 그림 중에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것도 있어 이채롭습니다. 1934년 작품 ‘여름 실내에서’를 보면 이인성의 작가적 역량을 확인하게 됩니다. 보통 수채화 하면 물의 번짐을 이용한 투명하고 가벼운 효과를 떠올리게 되지만, 그의 불투명 수채화는 엷게 그린 유화로 착각할 만큼 견고한 느낌을 줍니다.

이 그림은 인상주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빛에 대한 관심과 야수파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채가 돋보입니다. 캔버스 천의 툭툭한 질감 위로 살짝 스며든 물감은 가로 방향의 터치가 살아있어 생동감이 넘치며,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 넓은 거실에 놓여진 테이블과 이국적인 식물들은 서양식의 입식 거실을 묘사하고 있어 작가의 서구 지향적 취향을 반영합니다. 이인성은 고딕 풍의 신식 건물들 또한 즐겨 그렸는데, 1930년대 중반에 제작된 수채화 ‘계산동 성당’은 그 예라고 하겠습니다.

뒤이어 나열되는 정물화나 풍경화 역시, 서양 근대 미술 작가 중 하나의 작품을 갖다놓은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근대 미술의 여러 경향을 무리없이 소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품이 제작된 1930년대 한국 사회가 그다지 풍요롭지만은 않은 시절이었음을 감안할 때, 일반 대중의 삶과 유리된 지나치게 화려한 삶을 묘사하는 작품들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1934년의 작품 ‘가을 어느날’까지만 해도 여인의 옷차림새나 등장하는 식물들의 모습에서 ‘서구인의 시각으로 각색된 한국’이라는 인상이 짙지만, 마지막으로 그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했던 1944년의 역작 ‘해당화’는, 불의의 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작가가 다다랐을 향토성의 본질을 짐작케 하는 작품입니다. 해당화가 핀 바닷가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세 여인의 모습은 연출된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자연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