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샘터' 웹진 www.isamtoh.com / 2000. 12]   예술의 도시 파리에는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세느강을 가운데 두고 세계적인 미술관 두 개가 마주 서 있습니다. 하나는 그 유명한 루브르 미술관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오르세 미술관입니다. 루브르 미술관은 르네상스와 고전주의ㆍ로코코 양식 건축물로서 고대 유물부터 18세기까지의 미술 작품을 소장ㆍ전시하고 있고, 오르세 미술관은 19세기 말에 지어진 건축물로서 소장 예술품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대표하는 작품들입니다. 두 미술관의 소장품과 건물 자체가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품인 셈이어서 두 미술관의 의미와 가치는 더욱 커 보입니다.

특히 오르세미술관은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을 잇는 사실주의, 상징주의, 그리고 인상주의 작품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어 '19세기 미술관'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립니다. 2001년 2월 27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오르세 미술관 한국전-인상파와 근대 미술’ 전에서는 회화 35점, 드로잉 13점, 사진 21점 및 미술관 모형 1점 등 오르세미술관 소장품 70점을 국내 최초로 소개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은 원래 기차역과 호텔의 용도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멀티플렉스 건물이라고나 할까요. 이 건물은 1878년 파리국립미술학교 건축학 교수 빅토르 랄루(Victor Laloux)가 설계해,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맞춰 개장했습니다. 1939년에 폐쇄됐으나, 1986년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에 의해 현재의 미술관 형태로 변신하였습니다. 19세기의 건축물을 원형과 거의 흡사한 수준으로 복원해 당시 건축 양식에 대한 생생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옛 건물들이 효율성 추구라는 명목 아래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지요.

제1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군요. 인상주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빛과 색채의 관계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빛으로 그린 사람’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르누아르의 그림으로 전시를 여는 것은 적절한 선택인 듯 합니다.

르누아르의 그림 뒤로는 작가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있습니다. 정면을 보고 있는 사진도 몇 있지만, 대부분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왼편 45도 각도로 올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는 저명한 사진가 펠릭스 나다르(Felix Nadar, 1820~1910)가 촬영한 작품도 있어, 그의 솜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뒤로 에드가 드가의 ‘발레 연습’이나 클로드 모네의 ‘생-라자르 기차역’, 에두아르 마네의 '로슈포르의 탈출'과 같은, 인지도가 비교적 높은 작가의 작품들과 알프레드 시슬레의 ‘루브시엔 설경’, 까미유 코로의 ‘물가의 버드나무’, 그리고 귀스타브 쿠르베의 사실주의적 작품 '샘' 등이 눈에 띕니다.

아,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았음직한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의 ‘이삭줍기’를 빼놓을 수 없지요. 소형 복제 그림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부분을 자세히 보면서 예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전엔 그냥 농촌의 정경을 그린 차분한 그림으로 생각했는데, 큰 그림으로 보니 지평선 근처에 보이는 풍성한 수확을 거둔 사람들의 무리와, 추수가 끝난 뒤의 황량한 들판에서 떨어진 이삭을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세 아낙의 모습이 뚜렷한 대조를 이루더군요. 비록 전면에 배치된 세 아낙의 형상이 화면의 거의 전체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풍요로운 사람들의 모습과 대조되면서 그들의 쓸쓸함이랄까, 삶의 고단함이 더욱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2전시실에 전시된 그림들은 전체적으로 크기가 작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폴 세잔느의 그림들은 “자연은 원통, 원뿔, 원추로 되어있다.”라고 표현한 그의 말처럼 작은 색면을 쌓아올리면서 입체적인 형태를 표현하는 견고한 면 처리라든가, ‘바구니가 있는 정물’에서 보이는 다중시점 화법이 눈길을 끕니다.

그밖에 빈센트 반 고흐의 ‘생 레미의 생 폴 정신병원’, 조르쥬 쇠라의 ‘푸른 옷의 농촌 아이’, 툴루즈 로트렉의 ‘사창가의 여인’ 등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지만 그들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은 전시되지 않았고 그나마 한 점씩 뿐이라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또 전시장 거의 끝 부분의 파리 만국박람회 때의 사진들은 100년 전의 파리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였지만, 전반적으로 사진의 크기가 작아서 보기에는 좀 힘들었구요.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술사 책을 읽거나 작가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림의 맥락을 읽는 눈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림에 대한 앎이 피상적인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원작을 직접 보면서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