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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와 집고양이, 한밤중의 만남 외출고양이로 사는 집고양이와 길고양이가 한밤중에 만났습니다. 집고양이는 "너 황소? 나 최영의야!" 하고 대사를 치는 송강호의 기세로 뚜벅뚜벅 걸어옵니다. 아직 어린 노랑둥이 길고양이는 뒷모습만 보여서 얼굴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긴장과 호기심이 교차하는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집고양이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도망은 가지 않지만, 그래도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는지 꼬리가 너구리 꼬리처럼 두껍고 크게 부풀어올랐습니다. 그 사이에 집고양이는 어느새 코앞까지 뚜벅뚜벅 다가와 있습니다. 혹시 싸움이라도 한 판 벌이려는 걸까요. 궁금합니다. 그런데 집고양이의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귀를 납작하게 내리고 눈매를 반달눈으로 뜨고는, 뭔가 설득하는 듯한 표정으로 어린 길고양이와 무언의 대화를 나눕니다.. 2010. 12. 8.
[폴라로이드 고양이] 104. 갈림길 앞에 선 고양이 아무 생각 없이 타박타박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오른쪽 길도, 왼쪽 길도 색깔만 다를 뿐 똑같아보여서 무심코 발길을 오른쪽 길로 돌려 봅니다. 오른쪽 길로 가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왼쪽 길은 어떨까?' 궁금증이 생깁니다. 어쩐지 가보지 못한 왼쪽 길에는 더 재미난 삶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관성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대개 가던 방향대로 가게 됩니다. 한번 내린 결정을 바꾸기도 그렇고, 되돌아가자면 다리도 아플 테고 지금까지 걸은 거리를 생각하면, 맨 처음 갈림길로 다시 가긴 귀찮거든요. 그러나 호기심도 모험심도 다 수그러들고, 돌아가기엔 너무 오랜 시간을 길에서 허비한 후에야, 가보지 못한 길을 생각하며 쓰러져 후회합니다. '그때 그 길로 다시 가야했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은 너무 늦었.. 2010. 12. 5.
단풍잎 융단을 만끽하는 고양이 둥글게 움츠린 고양이의 등짝이 어쩐지 추워보이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단풍이라곤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의 희미한 붉은색으로만 느낄 수 있을 따름입니다. 한때 붉게 물들었다 잿빛을 띤 분홍색으로 변하는 단풍잎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있는 힘껏 불태우고 아무 미련 없이 이 세상과 작별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머물렀던 시간을 '소풍'이라고 표현했던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소풍 가던 날의 들뜬 마음을 접고 가만히 이 땅으로 내려앉은 낙엽들이 마른 땅에 따스한 융단을 만들어줍니다. 그 융단을 즐거이 이용해 주는 것은 동네 고양이입니다. 노란 치즈 얼룩무늬가 예쁜, 통통한 겨울 고양이입니다. 등산객의 인기척이 들려도 한번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담담한 표정으로 단풍잎 융단을 만끽합니다. 융단 .. 2010. 12. 3.
[폴라로이드 고양이] 103. 현행범 아닌 현행범 길고양이는 가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슬며시 나오곤 합니다. 사진 속 고양이가 숨어있다 슬며시 걸어나온 저 곳도, 너비는 10cm가 채 못 되어 보이지만 고양이는 스르르 빠져나왔습니다. 보통 머리뼈만 통과할 수 있는 너비만 확보되면 별 어려움 없이 나올 수 있다고 하는데, 수염으로 통과할 곳의 폭을 재어 가능하다 싶으면 그리로 나오는 거죠. 아무도 없겠거니 하고 슬며시 빈 틈을 찾아 나오다가, 그만 저와 딱 마주치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고양이. 금방이라도 직립보행을 할 것 같은 자세여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한편으론 인기척에 놀란 것 같기도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난간에 두 발을 딛고 오르려다 움찔 하는 모습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땡땡이치고 몰래 학교 담을 넘다가 담임선생님께 들킨 학생처럼 .. 2010. 11. 20.
스웨덴 식객 고양이, 캅텐 이야기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지친 마음을 쉬러 갔던 북유럽 고양이 여행에서 만난 고양이들 중에아직 소개하지 못한 고양이 가족이 있습니다. 식객 고양이 캅텐인데요,스웨덴어로 '캡틴'을 뜻한다고 합니다. 캅텐은 집고양이가 아니지만 아저씨 댁에서 매일같이 밥을 먹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출출하면 슬그머니 현관 난간에 둔 밥을 먹고, 집고양이와 놀다가 가곤 합니다. 한국에서도 반 정착 형태로 살아가는 길고양이가있는데, 캅텐도 그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밥은 얻어먹지만, 고양이의 자존심은 버리지 않는다." 당당한 자세로 식객 고양이의 자존심을 이야기합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캅텐을 위한 밥그릇과 물그릇은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주변이 초록 들판과 커다란 나무로.. 2010. 11. 20.
[폴라로이드 고양이] 102. 눈 뜨고, 귀 열고, 말하기 눈 가리고 3년, 귀 막고 3년, 입 막고 3년. 옛날 시집살이하는 며느리가 그랬다지요? 요즘에는 그런 자세를 요구하는 집도 거의 없겠지만요. 맨 처음 저런 조각을 본 것은 한 헌책방에서였는데 그땐 원숭이 세 마리가 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답니다. 동남아 어딘가에서 만들었음직한 분위기의 조각이었죠.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일본의 고양이 카페 앞에서 저 3인방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너희는 어디서 왔니? 물어보고 싶었지만, 겁에 질린 표정의 고양이 3인방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눈 가리고 3년, 귀 막고 3년, 입 막고 3년'의 자세는 약자로 취급받는 이들, 혹은 약자의 상황에 공감하는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취하는 방어 자세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나는 아무 힘이 없는데, 눈에 보이기는 하니 마.. 2010.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