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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로이드 고양이] 102. 눈 뜨고, 귀 열고, 말하기 눈 가리고 3년, 귀 막고 3년, 입 막고 3년. 옛날 시집살이하는 며느리가 그랬다지요? 요즘에는 그런 자세를 요구하는 집도 거의 없겠지만요. 맨 처음 저런 조각을 본 것은 한 헌책방에서였는데 그땐 원숭이 세 마리가 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답니다. 동남아 어딘가에서 만들었음직한 분위기의 조각이었죠.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일본의 고양이 카페 앞에서 저 3인방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너희는 어디서 왔니? 물어보고 싶었지만, 겁에 질린 표정의 고양이 3인방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눈 가리고 3년, 귀 막고 3년, 입 막고 3년'의 자세는 약자로 취급받는 이들, 혹은 약자의 상황에 공감하는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취하는 방어 자세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나는 아무 힘이 없는데, 눈에 보이기는 하니 마.. 2010. 11. 15.
길고양이에게 “굿모닝” 인사하는 이유-설치미술가 김경화 소심한 길고양이와 눈을 맞출 기회란 드물다. 한밤중에 짝을 찾아 헤매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거나, 옆구리가 터진 채 널브러진 쓰레기 봉투를 목격하고서야 그들이 가까이 있음을 알 뿐이다. 이 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길고양이가 살고 있을까? 인간을 피해 숨던 길고양이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선다면 어떤 모습일까? 내가 상상으로만 그려보았던 순간을, 김경화는 대규모 설치작업으로 구현해낸다. 전시장 바닥에 머무는 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는지 계단, 담벼락, 심지어 뒤뜰까지 차지한 길고양이와 비둘기의 기세는 압도적이다. 혹시 발로 건드릴까 싶어 조심조심 아래를 살피며 걷다 보면, 조각 사이로 지뢰처럼 촘촘히 심어둔 작가의 의중이 밟힌다.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의 동물들과 가까이 마주할 때, 내가 발 딛고 선 땅에 인간만 .. 2010. 11. 15.
[폴라로이드 고양이] 101. 길고양이는 왜 자꾸 납작해질까? 가끔, 납작하게 몸을 낮춘 길고양이와 마주칩니다. 나이도 어린 것으로 보아, 꼬부랑 할머니가 그렇듯 노화로 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가끔 허리를 펴는 모습을 보이는 걸로 봐서 허리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런 엄폐물도 없는 거리에서 길고양이는 최대한 사람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사람의 눈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그렇게 몸을 낮추고 잰걸음으로 이동합니다. 길고양이 몸이 자꾸만 납작해지는 건, 작고 가녀린 어깨에 얹힌 삶의 무게 때문이겠죠. 사람이든, 길고양이든 누구나 보이지 않는 그런 짐을 짊어메고 살아가지만, 길고양이에겐 유독 그 짐이 크고 무거운 것은 아닐까요. 길고양이 등짝 위로 커다란 짐보따리 하나 얹힌 것 같은 그런 모습을 만나는 날에는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2010. 11. 12.
길고양이가 선물한 가을 숲 풍경 오래된 아파트에 살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비록 시설이 낡아 불편하기는 하지만, 아파트가 오래될수록 화단에 심은 나무도 함께 자라거든요. 나만의 화단은 아니어도,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곱게 단풍 드는 나무를 보고 있으면, 부자의 정원이 부럽지 않습니다. 이런 화단 근처에선 길고양이를 가끔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아파트 고양이들은 장보러 갈 때 어두운 밤길에서나 가끔 마주치곤 했는데, 이날은 웬일인지 동그랗게 식빵을 굽고 있더군요. 화단은 며칠새 찬바람에 떨어진 낙엽으로 곱게 덮였습니다. 길고양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낙엽길이지만, 덕분에 차분히 걸어볼 수 있게 되었네요. 미미하나마 바닥에 쌓인 낙엽으로 보온 효과가 있을 것 같아도 그것은 땅에 사는 벌레들에게나 도움이 될 뿐, 덩치가 .. 2010. 11. 12.
[폴라로이드 고양이] 095. 우유식빵의 추억 고양이가 식빵을 잘 구웠는지 평가할 때 앞발 반죽이 튀어나오지 않는가 보는 것은 식빵 품평의 원칙 중에서도 가장 기본입니다만, '식빵의 달인' 냥 선생님의 엄격한 기준에는 미치지 못해도 타고난 미모로 추가점수를 얻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몸에 뽀얀 우유를 품고 태어난 밀크티도 그랬습니다. 밀크티가 한번 식빵을 굽기 시작하면 "우윳빛깔 밀!크!티!" 하고 소리 높여 응원을 보내는 동네 소녀 길고양이들이 몰려들곤 했습니다. 반죽이 다소 삐져나오더라도 밀크티의 식빵은 언제나 빵집에서 가장 먼저 품절되곤 했습니다. 빵 반죽에 아무런 첨가물을 넣지 않고도, 그냥 눈으로 베어물기만 해도 달콤한 것이 밀크티 식빵의 매력이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100년만의 폭설이 내린 날 이후로 종적을 감춘 밀크티의 모습이 생각.. 2010. 11. 6.
[폴라로이드 고양이] 093. 가을이 오는 소리 나뭇잎 가만히 움켜잡은 고양이 발 밑으로 사각사각, 바스락 소리 나기 시작하면 가을은 이미 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낙엽을 꼭 움켜쥔 고양이의 앞발을 나도 꼭 잡아 따뜻하게 데워주고 싶은, 그런 늦가을 오후입니다. 구독+ 버튼으로 '길고양이 통신'을 구독해보세요~ 트위터: @catstory_kr ↓ '손가락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2010. 11. 4.